“배고파서 왔수다”… 북한군 연이은 귀순, 이유 있었다
입력 2012-11-04 18:56
‘상관 살해 귀순’과 ‘노크 귀순’ 등 최근 잇따라 발생한 최전방지역 북한군 병사들의 귀순은 배급제가 폐지되고 자급자족으로 군 식량보급체제가 바뀐 데 따른 것으로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 정권이 지난 6월부터 배급제 철폐를 포함한 ‘6·28조치’를 공식화하면서 군대에 대한 식량보급이 전면 중단되자 굶주린 북한군 병사들의 군기해이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식량배급제 공식 철폐 이후 군대도 기존의 구(舊) 소련형에서 1950년대 중국형 자급자족 체제로 변했다”고 밝혔다.
과거 소련군은 군수물자·식량 보급은 공산당이 책임지고, 군대는 훈련과 작전에만 전념하는 형태였던 반면 마오쩌둥(毛澤東)이 조직한 중국군은 식량을 자체 부대에서 자급자족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북한군은 해방 이전부터 김일성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소련파’가 노동당을 장악하면서 1945년 정권 수립과 함께 소련형으로 조직됐으며 모든 정규군이 당으로부터 식량을 공급받아 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인민에게 제공할 식량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북한 지도부가 어쩔 수 없이 군 조직 체제를 바꾼 것”이라며 “이에 따라 각급 부대가 서로 먹고살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상황에 놓이게 됐고, 최정예 전방부대조차 굶는 장병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군에 최우선권을 부여했던 김정일 시대의 선군(先軍)사상 대신 모든 정책을 당 중심으로 결정하겠다는 개혁노선을 견지한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지난 6월 북한 최고지도부가 대대적인 숙군과 동시에 군이 장악해왔던 외화벌이를 비롯한 제2경제 기득권을 환수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군대 보급 상황이 열악해졌다고 우리 정부는 보고 있다.
다른 정보당국 관계자는 “서해에 배치된 해군은 병사들을 꽃게잡이 등 어업에 동원하고 육군은 밭 경작에 나서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막 시작된 군 체제 변화가 전군으로 확대될 경우 앞으로 북한군의 식량사정은 더욱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강원도 고성군 동부전선 ‘노크 귀순’ 사건 당시 해당부대는 귀순 북한군 사병이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하자 심문을 하기 전 라면부터 끓여줬다.
이런 가운데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열린 김일성·김정일 동상 제막식 연설을 통해 “당과 수령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군사가다운 기질이 있고 작전전술에 능하다고 해도 우리에겐 필요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TV가 지난달 30일 보도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