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곽한주] 웬 할로윈?

입력 2012-11-04 19:43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중에 ‘퍼펙트 월드’란 영화가 있다. 1993년 개봉해 호평을 받았던 작품으로, 이스트우드는 탈옥수인 케빈 코스트너를 뒤쫓는 보안관 역으로도 나왔다. 얼마 전 늙은 밋 롬니 지지자로 방송을 탔지만 현존하는 가장 존경받는 영화감독 중 한 명인 이스트우드의 원숙한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8살 소년 필립의 꿈은 다른 아이들처럼 생일 파티나 할로윈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엄격한 홀어머니가 종교적인 이유로 생일 파티도 열어주지 않고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축제도 즐기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년기를 박탈당한 필립은 때마침 10월의 마지막 날 당국의 추적을 피해 도망치던 탈옥수 일행에게 납치된다.

유치원서 펼치는 파티의 정체

탈옥수 중 한 명인 코스트너는 필립에게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고 필립에게 할로윈 가면을 사주고 할로윈을 즐기도록 해준다. 기묘한 상황에서 형성되는 유사 부자관계를 그린 따뜻하면서도 슬픈 영화다.

할로윈이라는 요상한(?) 서양 명절을 알게 된 것은 이 영화 덕분이었다. 하얀 유령 가면을 쓰거나 호박 등불을 든 아이들이 이웃집을 돌며 “대접할래, 당해볼래?(Trick or treat?)”라는 황당한 위협을 하면 어른들이 미리 준비해둔 캔디를 한 움큼씩 집어주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퍼펙트 월드’를 떠올리게 된 것은 순전히 TV 뉴스 덕분이었다. 며칠 전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할로윈 파티를 즐기고,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을 위해 할로윈 파티를 열어주는 장면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할로윈 파티가 잊었던 옛 영화를 떠올리게 한 셈이다.

그러나 저러나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궁금했다. 내게는 아직도 낯선, ‘퍼펙트 월드’를 보지 않은 수많은 한국인들에게는 더더욱 낯설 수밖에 없는 할로윈이 어떻게 우리 곁에까지 다가온 것일까. 왜 젊은이들은 서양 유령 가면을 쓰거나 기괴한 괴물 분장을 하고 즐거워하는 것일까. 왜 유치원 선생님들은 켈트족의 풍습이라고도 하고, 기독교 축일의 변형이라고도 하는 기원이 모호한 서양 명절에 대해 가르쳐야 했을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의 할로윈 파티는 해외에 거주할 때 할로윈 풍습을 신기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삼삼오오 모인 데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할로윈 파티가 뉴스에 보도될 만큼 널리 퍼져나가고 있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할로윈을 한번 신나게 놀아볼 ‘건수’로 삼은 걸까. 아니면 이미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도입해 초콜릿 장사로 톡톡히 재미를 본 장사치들이 우리 주머니를 털기 위해 준비한 차기 아이템인가.

서양 명절까지 끌어 들여서야

할로윈은 미국과 영국에서 널리 행해지는 축제라던데, 이들 나라에 조기유학을 많이 보내기 때문인가, 아니면 기독교가 득세하기 때문인가. 본래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문화는 더 발전한 곳에서 덜 발전한 곳으로 전파된다는데, 할로윈의 도입은 서양문화가 우리 문화보다 발전한 문화라는 징표인 것인가. 그렇다면 일종의 역(逆)오리엔탈리즘이 아닐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우리의 문화 수요가 왕성하다는 표현인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미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판에 서울 한복판에서 할로윈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서양인들이 K팝이나 한국 드라마를 즐기긴 하지만 우리의 추석이나 단오를 받아들이진 않지 않는가. 2012년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할로윈은 무엇이란 말인가.

곽한주 명지대 교수 디지털미디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