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천상의 무대로 떠난 장민호 선생을 추모함

입력 2012-11-04 19:39

연출과 편집의 기술이 판치는 문화계에서 그의 연기는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았다. 그는 ‘연기(演技)는 곧 연기(煙氣)’라는 사실도 인정하면서 과도한 평가를 사양했다. “연기는 사라짐의 미학이다” “배우는 시대의 축도(縮圖)다” “연극은 어머니의 젖가슴”이라는 어록은 여기에서 나왔다. 허무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삶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기에 생애를 바쳐 사랑했다.

그토록 연기를 사랑한 ‘연극계의 큰 별’ 장민호 선생이 오늘 먼 길을 떠난다. 많은 후배들이 천상의 무대로 향하는 상여를 부여잡고 있다. 그들의 눈물은 한 시대에 한 우물만 파며 치열하게 살았던 선배에게 바치는 최상의 추모다. 또한 연극무대와 스크린, TV브라운관을 오가면서도 맑고 깨끗한 일생을 보낸 아티스트에 대한 경의일 것이다.

연극판에서 장민호의 존재감은 묵직한 것이었다. 연극 ‘파우스트’의 주인공을 네 차례나 하고 14년에 걸쳐 국립극단장을 지낸 데서 알 수 있듯 한국 연극의 간판이자 상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부가 2010년 12월 서울역 인근 서계동에 ‘백성희 장민호극장’을 세워 기념토록 한 것은 그에 대한 국민의 사랑을 대신한 것이었다.

장민호는 대중과 애환을 함께한 국민배우였다. 1947년 ‘성우(聲優)’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방송에 출연한 그는 특유의 정감 있는 목소리와 친숙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1956년에 방송된 ‘청실홍실’을 비롯해 ‘청춘극장’, ‘금삼의 피’ 등에 출연하며 연기인생의 꽃을 피웠다.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인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나이 든 원빈 역할을 해내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연기파 배우로 알려졌다.

선생은 평소에 후배들에게 “배우의 연기는 관객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다”는 말을 즐겨 했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그의 연기에서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었다. 이제 더 이상 장민호의 연기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고인의 목소리와 표정, 건실한 삶의 모습은 오래도록 남아 대중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