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사이클 황제의 추락

입력 2012-11-04 19:49

한때 동갑내기 스포츠 선수에게 완전히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의 불굴의 의지와 스포츠 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선수는 바로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이다.

암스트롱은 부모의 이혼과 계부의 폭력으로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탈선하기 쉬운 환경이었지만 그는 사이클 선수로 멋지게 성장했다. 그러나 전 세계 사이클 대회를 휩쓸며 선수로서 절정에 달했던 1996년 고환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생존율이 3%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암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앙상하게 마르는 것은 물론 한쪽 고환과 뇌 일부까지 잘라내야 했지만 그는 사이클 트랙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또한 고통스런 투병 중에도 자신의 치료 과정을 공개하는 등 암환자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그는 사이클 선수로 돌아왔다. 1999년 험하고 가파르기로 유명한 투르 드 프랑스에 참가한 그는 1위로 골인했다. 2등과의 격차는 무려 7분이 넘었다. 죽음까지 극복한 그의 정신력을 누가 이길 수 있었을까. 이후 그는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를 사상 최초로 7회 연속 제패하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이클 선수란 호칭을 얻었다. 7연패하는 동안 그가 얀 율리히와 벌인 아름다운 경쟁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가장 인상 깊은 스포츠 사건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당시 1∼2위를 달리던 두 사람은 상대방이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스포츠맨 정신을 보여줬다. 사이클에서 은퇴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한 그는 세계적 기업의 모델로 출연하거나 강연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암환자 지원에 기부하며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미국반도핑기구(USADA)가 그의 지속적인 도핑 행위를 입증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그는 ‘최악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투르 드 프랑스가 그의 타이틀 7개를 박탈하는 등 그는 스포츠계에서 영구 제명됐다. 이에 따라 그는 투르 드 프랑스의 우승 상금과 보너스 등 수천만 달러를 반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재단을 후원해왔던 기업들로부터도 줄소송을 당할 전망이다.

그의 끝없는 추락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쓰리다. 단순히 팬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를 보며 희망을 얻은 암환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받았을 배신감과 상처 때문이다. 암스트롱은 실제로 존재하기엔 너무나 완벽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