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입에 담을 수 없는 만행”
입력 2012-11-04 19:48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한 달 전, 영국 런던의 고등법원은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 영국의 식민 통치 동안 벌어진 가혹한 폭력의 희생자들 가운데 생존한 4명의 케냐인들이 영국 정부를 상대로 건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4년에 걸친 케냐인들의 끈질긴 법정 투쟁이 획기적인 판결을 이끌어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02년부터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대대적인 해방투쟁이 발생한 것은 1950년대였다. 흔히 마우마우운동으로 알려진 반식민투쟁은 당시 케냐인들 가운데 다수를 차지한 키쿠유족(族)이 수탈당한 토지와 자유 쟁취를 내걸고 조직한 것이었다.
케냐인들의 저항에 맞선 영국의 대응은, 일부 영국의 정치가들과 역사가들이 자랑스럽게 내세웠던 것처럼, 자비로운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조악한 무기로 무장한 채 산과 밀림에 진을 치고 있던 2만 가량의 케냐 게릴라 부대를 소탕하기 위해 영국 정규군 2만과 공군이 가공할 무력으로 무자비한 진압에 나섰다. 더 심각한 것은 무장투쟁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키쿠유족에게 가해진 가혹 행위이다. 하버드대학의 한 역사가에 의하면, 약 150만에 달하는 키쿠유족 민간인들이 수용소에 감금당하거나 거주지 내에 억류된 채 온갖 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키쿠유 민간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이번 재판의 원고 변호사의 표현처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만행들”이다. 많은 남성들이 펜치로 거세당했고 칼, 총열, 깨진 병, 전갈 등이 여성들의 성고문에 이용되었다. 귀가 잘리고 안구가 훼손됐고 몸에 등유를 끼얹은 채 불이 지펴졌다. 이번 재판에서 원고로 나선 4명의 케냐인(그 중 한 명은 2년 전 아쉽게도 사망했다)들이 당했던 가혹 행위도 이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판이 진행되던 지난 4월 영국 정부가 식민지에서 철수할 무렵 식민 지배와 관련된 중요 파일들을 계획적으로 파기했고, 그 중 일부는 외무부가 관리하는 극비 장소에 최근까지 은폐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영국 본토와 식민지 고위 관리들의 공모 아래 선별되어 이미 오래 전에 대량으로 파기된 파일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외무부가 은폐한 문건들은 원칙대로라면 1980년대에 이미 국립문서보관소로 옮겨져 일반에게 공개되어야 마땅한 것들이었다.
지난 10월 5일 영국 고등법원의 판결은 여러 가지 점에서 역사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먼저, 영국이 공식적으로 식민지에서 벌어진 “입에 담을 수 없는” 만행을 최초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동시에 그와 같은 만행의 희생자들이 영국 정부를 상대로 영국 법정에서 승소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케냐인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식민 지배 기간에 벌어진 만행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판의 직접 당사자인 영국 외무부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미칠 엄청난 파장을 감안해 항소를 준비할 것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외무부의 우려처럼 당장 키프로스, 예멘, 말레이시아 등 영국의 식민 지배 동안 가혹 행위가 발생했던 지역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거나 새롭게 소송을 걸 가능성이 높다. 이번 재판에서처럼 영국 정부가 복잡한 법률적 세부사항을 이용해 진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남긴 어두운 그림자를 가능한 한 사실 그대로 인정하고 성찰할 계기로 삼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지난 토요일 국내 언론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일본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권이사회의 권고안에 우경화된 일본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를 일이지만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은 케냐인들의 속담에 그대로 담겨 있다. “부당한 힘에 짓밟힌 자들은 언제나 다시 돌아온다. 정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은 돌아오는 일이 결코 없다.”
김용우(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