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영적인 화전민 본능
입력 2012-11-04 18:19
옛날 강원도 산속 깊은 곳에서 화전민 생활을 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농사철이면 산등성이를 태워서 밭을 일구고 비수기에는 약초를 캐다 팔아서 먹고살았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때아닌 눈이 엄청나게 많이 오고 자연재해가 겹치는 바람에 길은 고립되고 농사는 지을 수 없어 졸지에 화전민들은 살 길이 막막해졌다. 산 아래 사는 주민들이 가만히 보니 언제부터인가 화전민이 안 보이더라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에 동네 사람들이 화전민을 찾아서 첩첩 깊은 산중으로 올라가 보았는데, 불행히도 그들은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깊은 산중에서 움직일 수 없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굶어 죽은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 화전민들이 씨앗을 보관하는 장소에 가 보니 놀랍게도 씨앗이 그대로 있더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다음 해 농사 때에 뿌리기 위하여 준비해놓은 씨앗이었다. 희한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먹고살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가면서도 어떻게 해서 이것들을 먹지 않았을까?
이것이 바로 화전민의 본능이었다. 굶어 죽을지라도 다음 해 뿌릴 씨앗에 손을 대지 않는 본능이 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해 농사를 향한 열린 마음이 배고픔의 본능을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능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모든 화전민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것을 일명 ‘화전민 본능’이라고 불러본다.
우리의 신앙은 이와 같은 것이다. 믿는 사람들 속에는 새로운 본능이 형성되어 있다. 아니 형성되어 있어야만 한다. 지금 나의 삶이 좀 힘들어도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 다른 민족, 다음 세대를 향해서 열려 있는 ‘영적 본능’ 말이다. 100년 전 한국 초대교회 역사를 보면 그들은 못 먹고 못 살면서 선교사를 파송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중국 가정교회의 이야기를 봐도 마찬가지다. 그들 속에는 ‘영적 화전민의 본능’이 살아있었다.
YWAM 창시자 로렌 커닝햄이 13세 때 이야기다. 교회 한 구석에서 기도하는 중에 그는 불같은 성령을 경험했고 동시에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환상을 보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의 어머니는 다음 날 그의 손을 붙들고 시내 한 신발가게로 갔다. 그리고 가장 좋은 신발을 주문했다. ‘엄마, 내 신발은 아직 멀쩡한데 무슨 일인가요?’ 엄마는 아들의 눈을 쳐다보면서 ‘성경말씀에 좋은 소식을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니?’ 엄마는 아들이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 기뻤던 것이고, 그 아들에게 제일 좋은 신발을 신겨주고 싶었던 것이다. 영적 화전민 본능이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반응이 아닌가? 우리 안에도 영적 화전민 본능이 살아있는가? 우리가 점검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