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18) 울보] 마음 근육 키우는 명약

입력 2012-11-02 18:23


명량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 한 달 뒤인 1597년 10월 중순, 이순신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자신을 가장 많이 닮았던 막내아들이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면이 전사한 것을 알고는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고 통곡했다. 하늘은 어찌 이다지도 어질지 못한가!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인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토록 잘못된 일이 어디 있느냐. 하늘과 땅이 캄캄하고 햇빛조차 변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해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지 못하게 한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그 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이제 누구에게 의지하겠느냐. 너를 따라 같이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구나.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 또한 의지할 곳이 없어 아직은 참고 살아야 한다마는, 내 마음은 이미 죽어 껍질만 남아 울부짖을 뿐이다.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이 1년 같구나. 하룻밤이 1년 같구나.”

이순신은 편지를 받자마자 통곡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위로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겉으로는 울 수 없었다. 군인이었기에 수많은 죽음을 겪었고, 리더였기에 소리 내어 통곡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고, 아비였다. 꿈속에서나마 울부짖던 그는 결국 소식을 들은 뒤 4일 후에야 자신의 군영에서 멀리 떨어진 소금 굽는 노비의 집에 가서 목 놓아 울었다.

‘난중일기’에는 ‘눈물 많은 이순신’이 자주 나온다. 나라 걱정, 어머니 걱정, 백성과 군사 걱정 때문에 울었다. 예수는 “우는 자는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받을 것”이라고 했다. 이순신의 울음은 자신의 고통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이었다. 승리의 결의를 다지는 도구였다.

오늘날 사람들은 웃음은 고급스럽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울음은 절제력이 없거나 비이성적인 사람의 행동, 패배한 사람의 것, 통속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울어야 할 일과 이유들이 너무 많다. 열정과 감정이 없는 사람, 감사함을 모르는 사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울 수 없다.

울음은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약이 된다. 웃음도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이지만 얽히고설킨 마음, 답답한 마음, 노한 마음을 푸는 것에는 목 놓아 우는 것이 명약이다. 울면서 마음 근육을 키워보자.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