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러미 채소를 아시나요] 신선한 제철채소 안방서 받아 먹어요

입력 2012-11-02 18:03


소규모 농가와 직거래 배송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열망은 커지고 있지만 장보러 나갈 시간이 없다. 애써 시장에 나가도 뭐가 건강한 먹거리인지 고르기 버겁다. 도무지 뭘 믿고 사야 되는지 모르겠다면 희소식이 있다. 건강한 먹거리를 매주 집으로 배달해주는 채소 꾸러미가 그것이다. 채소가 배달되는 동시에 지역 공동체가 살아나고 소규모 농가는 힘을 얻는다. 가격 폭등과 상관없이 소비자들은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꾸준히 공급받을 수 있다.

세번째 꾸러미를 받아든 김경아(가명·32·여)씨는 편지 한 장을 상자 속에서 꺼냈다. “지난번 부추 때문에 속상하셨죠∼”라며 사과를 하는 짧은 글이다. 지난주 채소 꾸러미에 들어 있던 부추가 시든 상태로 배달돼 은근히 속상하던 터였다. 케이크 상자보다 약간 큰 아이스박스에 담긴 채소가 한 번 배달에 2만5000원. 꾸러미 채소는 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친환경 농산물보다는 싸지만 일반 채소보다는 약간 비싼 편이다. ‘비싼 돈 주고 시켜먹는 채소인데 시든 걸 주다니’ 했던 마음은 농민이 보내온 편지에 사르르 녹았다. 채소 배송의 어려움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편지까지 보내주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번엔 뭐가 들었나.” 위생봉지에 둘둘 싸여 있는 채소들은 마트에서 예쁘게 포장돼 팔리는 것보다 정감이 있다. 친정 엄마가 반찬을 싸 보내는 느낌이랄까. 달걀과 두부는 매주 보내주는 기본 품목이고 고구마줄기, 호박잎, 풋고추, 옥수수와 포도가 싱그럽다. 김씨는 당장 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옥수수 삶을 준비를 시작했다.

◇‘시골 할매’가 생겼다=‘꾸러미 채소’가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소규모 농가에서 재배한 채소를 도시 지역 소비자에게 상자에 넣어 보내주는 일종의 직거래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현재 30여개 사업자·단체가 꾸러미 채소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된다. 채소 한 꾸러미를 받는 데 2만5000원을 내야 한다. 사업자마다 다르지만 격주 또는 주 단위로 신청을 받는 곳이 많다. 유기농·친환경 채소를 표방하는 곳이 많고 딱히 유기농이 아니더라도 ‘자식에게 보낼 채소를 기른다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인다’는 게 대원칙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관행적인 농산물 유통구조를 벗어나 ‘믿을 수 있는’ 농가의 생산물을 받아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수많은 중간 단계가 있던 기존 농산물과 달리 직거래 또는 3단계 유통구조를 갖추고 있어 가격 경쟁력도 높다. 생산자는 이런 방식으로 도매시장 납품가 대비 최대 2배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중간 고리 역할은 농민단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맡고 있다. 대규모 기업농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던 소규모, 영세농, 여성농민, 마을 공동체가 꾸러미 채소 덕분에 어깨를 펴고 있다.

꾸러미에는 생산자 이름도 적혀 있다. 농산물을 보내주는 생산자 또는 마을 공동체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한층 믿음을 주는 대목이다.

채소가 자라는 모습과 마을 공동체의 일상을 전하는 편지가 함께 오고, 생산자 마을을 방문할 수도 있어 고향이 하나 더 생기는 효과도 있다. 생산자는 농산물을 받는 소비자들이 일정하게 정해지기 때문에 도회지에 나간 자식에게 먹일 채소를 기르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게 된다.

◇꾸러미엔 뭐가 담기나=사업자마다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달걀·두부를 기본으로 제철 채소 5∼9종류로 꾸려진다. 제철에 나는 채소가 맛과 영양이 가장 뛰어나고 가격 경쟁력도 높기 때문이다. 소규모 농가 또는 마을 공동체 위주로 공급자가 구성되기 때문에 당연히 지역 특산물의 비중이 높다. 강원도 마을 공동체에서 보내주는 꾸러미엔 토실토실 감자와 알알이 옥수수를 빼놓을 수 없다.

‘언니네 텃밭’의 강원도 횡성 공동체에서 보낸 이번 주 꾸러미는 텃밭두부 1모, 달걀 8개, 냉이, 가지말랭이, 단호박, 고추 부각, 무, 오이지로 구성됐다. 지난주에는 텃밭두부 1모, 달걀 8개, 고추, 토마토 장아찌, 삶은 시래기, 배추, 당근, 민들레 또는 버섯, 옥수수쌀을 넣었다.

‘흙살림’은 국내산 대하, 무농약 브로콜리, 유기농 오이, 무농약 쪽파, 무농약 콩나물로 이번 주 꾸러미를 구성했다. 원래는 친환경 채소 위주로 꾸리지만 일종의 ‘특집’ 성격으로 대하를 넣었다고 한다. 다음 주에 보낼 품목은 무항생제 방사 유정란, 유기농 오이, 유기농 아욱, 유기농 시금치, 무농약 우엉채, 무농약 방울토마토, 무농약 깻잎, 국내산 두부로 예고됐다.

‘완주로컬푸드 건강밥상 꾸러미’는 다음 주 꾸러미에 방사 유정란, 콩나물, 두부, 생강, 상추, 양파, 대파, 유색미, 아욱, 어린잎채소를 넣을 계획이다. 이번 주에는 방사 유정란, 콩나물, 두부, 밤, 청경채, 건토란 줄기, 쇠고기, 매실원액, 수삼을 보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