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노크귀순, 라면접대

입력 2012-11-02 18:23

6·25 전쟁 당시 백마고지 전투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고지전’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은 처음에는 애록고지에 상대 군이 숨겨놓은 담배와 술 등을 서로 나누다 남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북한군의 편지와 사진 등을 전해주며 인간애를 쌓아간다. 싸우기 싫은데 휴전협정 후에도 싸워야 했던 남북 병사들이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함께 부르는 ‘전선야곡’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영화다.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에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북한군 병사들이 남한군 병사로부터 초코파이를 얻어먹고 모자를 바꿔 쓰며 우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나온다. 60여년 분단의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이런 영화들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념은 다르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과 애잔함이 배어 있기 때문일 거다.

지난달 2일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 철책을 넘어 ‘노크귀순’한 북한 병사에게 생활관 병사들이 라면을 끓여준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뜨겁다.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은 “귀순했으면 심문하거나 다른 부대로 넘겨야 하는데 생활관 안에서 라면을 끓여준 게 말이 되느냐”고 국방장관을 몰아세웠다. 하지만 여론은 정 의원에게 오히려 불리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한 진보 교수는 “우리 병사들 얼마나 따뜻한가, 국민이 가장 절실한 것부터 해결해 준 우리 병사 같은 정치인이 돼라”고 했고, 정 의원이 군 미필자라 소초 상황을 모른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남방철책을 넘어 최전방 소초의 생활관까지 노크하고 돌아다닐 정도로 경계에 소홀했던 군의 해이한 자세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전쟁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약’에도 전쟁포로는 항상 인도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음식과 구호품을 제공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하물며 귀순 의사를 밝힌 굶주린 북한 병사에게 라면 한 끼 제공한 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작 ‘노크귀순’을 숨기고 CCTV로 귀순자를 발견했다고 여러 차례 허위 보고를 한 이번 사건 책임자들을 징계하지 않고 줄줄이 새로운 보직으로 옮겨준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거짓말하는 장성들에게 어떻게 내 생명과 나라 안보를 맡길 수 있겠는가.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