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조정희·윤건] “노숙자와 봉사자 하나님이 함께 만드신 생명… 서로 보듬어야죠”

입력 2012-11-02 18:00


“오늘 주제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거리에서 사는 데 무슨 행복이 있냐는 분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사실 행복을 잊고 삽니다. 주변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고 최선을 다하는 게 행복 아닌가요?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지난달 8일 오후 7시 서울 남산동 청어람아카데미, 노숙인으로 구성된 ‘한사랑봉사단’ 월요모임이 열렸다. 노숙인지원단체인 ‘거리의 천사들’ 조정희(46) 팀장은 둥그렇게 둘러앉은 노숙인과 봉사자들 가운데 서서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14년 만에 고향에 가 어머니와 외할머니 만나 함께 식사했을 때 가장 행복했지.” “이번 추석에 서울역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났죠. 10년 만에 만나 커피 한잔 하는데 할 말이 없어요. 근데 뒤돌아서니 눈물이 나.”

한동안 머뭇거리던 노숙인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 가족과 친구와 함께했던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이는 봉사자나 노숙인이나 차이가 없었다.

“‘거리의 천사들’이란 노숙인과 봉사자를 함께 일컫는 말입니다. 속뜻은 ‘누구나 노숙인, 봉사자가 될 수 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숙인이나 봉사자를 똑같은 생명으로 만드셨듯이 말이죠.”

거리의 천사들 윤건(56) 총무가 모임 마지막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며 말했다. 2주마다 열리는 이 모임엔 보통 10여명의 노숙인이 모인다. 노숙인 생활을 접고 자립·자활을 꿈꾸는 이들은 모임에서 봉사자와 대화를 나누고 노래도 부른다. 모임 이후엔 함께 식사를 하고 봉사활동에 나선다.

누구나, 아니 우리도 노숙인이 될 수 있다

거리의 천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설립됐다. 전신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상담소다. 이전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단체였는데 외환위기로 거리에 실직자가 대거 쏟아지면서 그해 12월 노숙인으로 전락한 이들을 돕는 단체로 전환했다.

윤 총무는 2004년, 조 팀장은 2007년에 이곳에 전임사역자로 합류했다. 이곳에 오기 불과 2∼3년 전만 해도 한 회사의 공동대표이자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이들이 매일 밤 거리를 누비는 이 일에 뛰어든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도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사업 실패를 맛본 이후 이곳에서 봉사하며 새 인생을 찾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누구보다 노숙인을 이해한다고 했다.

“이들의 심정과 처지를 이해하는 게, 하나님 없었으면 저도 어떻게 됐을지 장담 못하니까요. 야간 봉사를 하다 을지로 입구에서 중학교 후배를 만났는데 노숙자로 있더라고요. 서로 얼마나 놀랐는지요. 문득 저도 어쩌면 후배와 같은 상황에 놓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조 팀장)

이들은 실패를 견딘 원동력이 신앙이라는 점도 꼭 닮았다. 18년간 대기업 영업부서에서 일했던 윤 총무는 직장을 그만두고 동료와 공동 투자해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회사는 급격히 기울었고 2003년엔 퇴직금과 아파트 대출금 등 투자금을 모두 날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4년 봄엔 제 마음에 분노가 가득해 조절하기 어려웠습니다. 망하게 했던 이들을 찾아가 복수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고통스럽고 창피한 마음에 제가 없어져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야간 봉사를 하고 4박5일간 영성훈련을 다녀오면서 동업자들과 나 자신을 용서하자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때 ‘힘들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느냐’며 따지듯 물으며 기도했는데 ‘늘 곁에 있었다’는 응답을 받았어요. 곁에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윤 총무)

조 팀장 역시 사업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 30년 넘게 신앙이 없던 그가 교회를 찾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지인이 소개해준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회생이 불가능한 사업을 정리하며 가장으로 괴로워하는 일상이 반복됐지만 교회만 가면 마음이 편했다. 조 팀장은 말씀에 감동을 받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2005년 거리의 천사들 봉사 영상을 접하면서 결심을 바꿨다.

“영상을 보는데 ‘아 밤에 저렇게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나도 가서 도와야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홈페이지와 전화번호를 찾아 2006년 1월에 무작정 봉사에 나섰죠. 그래도 제안을 받고 나서기까지는 고민이 꽤 됐는데, 골로새서 4장 1∼6절 말씀을 보고 노숙인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해 회사를 그만두고 팀장으로 오게 됐습니다.”(조 팀장)

그래선지 윤 총무와 조 팀장이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각별하다. 이들이 자포자기한 모습을 볼 때마다 이전 그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노숙인 단체가 이들의 자립성을 저하시킨다는 지적도 있지만 저는 배고픈 사람에겐 밥을 주고 아픈 이들은 치료해 주며, 일할 사람에겐 일자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사회의 책임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 나가 밥을 전하는 건 신뢰를 쌓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드리는 겁니다. 그들이 필요한 건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니까요.”(윤 총무)

함께 할 가족이 필요해

많은 노숙인 단체가 그렇듯 거리의 천사들 동참자들도 배식 봉사를 한다. 여타 단체와 다른 점은 야간에 노숙자들을 찾아간다는 것. 이들은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밤 11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봉사자들과 을지로, 서울역, 종각 일대를 돌며 250여명의 노숙인들에게 간단한 식사와 생필품을 제공한다.

끼니때가 아닌 야간에 노숙인을 찾는 이유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을수록 노숙인들은 봉사자들과 말하길 꺼렸다. 야심한 밤에 국밥을 전하고 말 붙이는 일을 15년째 계속하자 노숙인뿐 아니라 시민들도 거리의 천사들을 점차 믿어주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뢰관계를 기반으로 거리의 천사들을 거쳐 일자리를 찾은 노숙인은 400명이 넘는다. 그간의 평판 덕에 노숙인에게만 판매 권한을 주어 자립을 돕는 것으로 유명한 사회적 기업 ‘빅이슈코리아’도 맡아 창간할 수 있었다. 비용 때문에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이들은 2010년 7월 빅이슈코리아 창간호를 내기로 결정했다. 노숙인이 편하게 발붙일 수 있는 직장공동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빅이슈를 계기로 사회적응에 성공하면서 노숙인들의 문화활동 참여도 늘어났다. 이제 빅이슈 판매원(빅판)들은 홈리스 월드컵에서 전 세계 노숙인들과 축구실력을 겨루고, 발레와 트위터로 사회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다. 거리를 벗어나 임대주택에 들어가고 저축도 한다. 삶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노숙인의 문제는 가족, 즉 공동체의 문제예요. 가족이 깨지면 돌아갈 곳이 없어 쉽게 노숙을 결정하게 되거든요. 가족이나 공동체가 있어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어요. 저도 이 일을 하면서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실패해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문제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이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윤 총무)

노숙인이 자립하는 그날까지

이들의 손을 거쳐 자립에 성공해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노숙인은 50명 정도다. 적은 인원은 아니나 거쳐 간 인원에 비해 많은 수는 아니다. 자립을 선택한 노숙인 대부분은 공장 생산직이나 주유소 점원 등 흔히 말하는 3D 업종에서 일한다. 윤 총무와 조 팀장은 노동 강도에 비해 버는 돈이 얼마 안 되는 데다 직장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거리로 다시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이나 지병으로 아픈 분들이 전체의 70%고, 나머지가 건강하고 자립의지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30%에게 일자리만 제공한다고 자립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이들의 생애는 보통 사람과 다르고 순탄치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력서 한 번 써보지 못했고 면접도 처음 봅니다. 모든 걸 가르치고 취업 후에도 지켜봐야 비로소 자립이 가능해집니다.”(윤 총무)

자립을 지원하는 이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연락을 끊고 다시 거리로 돌아갈 때다. 대인관계나 돈 문제가 원인인 이들도 더러 있지만 마음의 치유가 안 돼 거리로 돌아간 경우가 많다. 일자리와 집을 마련해줘도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노숙인을 볼 때 조 팀장은 무력감을 넘어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가 가장 힘들어요. 사회 적응 잘하시는 분들도 많죠. 그런데 사회생활에서 선악 분간도 잘 못하는 분들도 계세요. 노숙인 가운데 결손가정에서 자라거나 고아인 분들이 60%를 차지합니다. 가정에서 따뜻한 돌봄을 경험한 분들이 얼마 없어요. 필요한 건 가족인 것 같은데 우리가 진짜로 만들어 줄 수도 없고, 예배를 드린 경험도 없어 하나님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누릴 걸) 누리지 못한 분들의 삶의 패턴을 깨는 일이 참 쉽지 않습니다.” (조 팀장)

노숙인도 나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자립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이들과 자발적으로 나누려는 이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노숙인이 조직한 ‘한사랑봉사단’이 그 예다. 2007년 노숙인 16명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며 평균 5000원의 회비를 걷어 거리의 천사들로 찾아왔다. 이 사역을 시작한 지 꼭 9년 만의 일이었다.

빅이슈 판매로 자립하려 했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1년 만에 다시 거리로 나왔던 박모씨가 거리의 천사들로 돌아온 것도 이들에겐 희망이다. 평생 고아로, 머슴으로 살다 세상을 등지기보단 신앙 속에서 알코올 중독을 해결하겠다는 그의 결단에 윤 총무와 조 팀장은 힘이 난다고 했다.

이들은 앞으로 노숙인을 위한 호스피스와 ‘제2의 빅이슈’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매년 거리에서 사망하는 노숙인은 300∼400명 정도. 노숙인들이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아 사람답게 임종을 지키는 것이 이들의 숙원이다. 더 나가서는 빅이슈처럼 가족공동체 같은 기업을 세울 계획이다. 빅이슈 설립자가 한때 노숙인이었듯 대표가 노숙인인 기업을 세워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만드는 게 이들의 또 다른 목표다.

“노숙인에게 희망은 늘 있죠.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일러 거두리라 믿어요. 그래서 어디 계신지 모르는 노숙인을 위해서도 늘 기도해요. 우리와 함께한 시간이 추억이 되고 기억이 나고 하나님의 사람도 만나고 회복되시라고. 늘 그들에겐 기회가 있고 희망이 있어요. 우리처럼요.” 그들다운 대답이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