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 고통의 역사, 그림·조소 작품에 고스란히… 김선현 교수, ‘역사가 된 그림’ 출간

입력 2012-11-01 19:37


고 김화선(87) 할머니의 그림에는 일본 군인에게 속아 사탕을 받고 위안소로 끌려가는 앳된 소녀가 등장한다. 다가올 위기를 알지 못한 채 밝은 표정으로 군인과 마주하고 있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다. 또 다른 그림에는 해방 후 한때 머물렀던 중국의 식당이 나온다. 파란색으로 그려진 칸칸의 방이 위안소의 침상 같다고 했다. 평생 할머니를 따라다닌 ‘마음의 감옥’을 표현한 것이다. 박옥선(89) 할머니는 파란색 얇은 매트리스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고, 매우 추웠다고 기억했다. 김순옥(91) 할머니는 꽃밭에 서 있는 16세 때 자신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 꽃다운 인생을 되찾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난다.

김선현(44·여) 차의과학대 통합의학대학원 임상미술치료클리닉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과 심리적 분석을 담은 책 ‘역사가 된 그림’(이담 북스)을 펴냈다.

김 교수는 2005년부터 올해 6월까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1주일에 한차례 미술 치료를 진행해 왔다. 책에는 미술치료에 참여한 7명의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과 조소 작품 130여점이 들어 있다. 위안부 생활로 겪었던 삶의 궤적과 고통을 언어가 아닌 그림으로 읽어낼 수 있다.

특히 김화선 할머니는 가장 열성적으로 미술 치료에 참여해 그림 100여장을 남겼지만 지난 6월 한 많은 생을 마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 할머니는 “다시 태어난다면 일본 군인이 돼 일본군을 다 죽이고 싶고 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도 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김 교수는 “오랜 기간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PTSD)을 겪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미술 활동을 통해 치유해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PTSD는 큰 사건이나 재난 등 충격적인 상황을 접한 후 경험하는 불안, 공포 등의 정신장애를 말한다. PTSD의 새로운 치유 수단으로 주목받는 미술 치료는 미술 활동을 통해 불안감과 긴장감을 해소하는 통합의학의 한 유형이다. 김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미술 치료 사례를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가 얼마나 오랜 기간 삶에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의 과거사 사과도 거듭 촉구했다. 그는 “할머니들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평생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는 할머니 개개인에게 먼저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 다음, 국가적 배상 등 해결책이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을 나눔의 집에 기부할 생각이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