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의 시리아, 자유와 평화를 꿈꾸다] 중동 그리고 세계의 화약고, 시리아 사태

입력 2012-11-01 23:38


분쟁 도미노…레바논, 종파 갈등 이어 폭탄테러까지

시리아 사태가 레바논을 감염하고 있다. 사실상의 시리아 속국이었던 레바논은 종파별로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정치·사회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에서는 폭탄 테러가 발생, 정보 당국 수장 위삼 알 하산(47) 등 8명이 사망했다. 사고 배후에 아사드 정권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레바논의 종파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레바논과 시리아는 거리상, 정치적으로도 가깝다. 17~20달러를 내고 ‘국경 택시’를 타면 2시간 만에 시리아에 닿는다. 양국 간의 협정으로 여권 없이 주민증만 있어도 출입이 가능하다.

레바논이 1975~90년 종파 갈등으로 내전을 겪을 때부터 시리아는 레바논 내정에 간섭해 왔다. 문제는 종파 갈등이다. 아사드 정권과 가까운 레바논의 시아파는 정부군을 지원한다. 반면 수니파는 반군을 지원하고 있다.

시민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사드를 지지하는 ‘8일파’와 반대하는 ‘14일파’는 날짜를 바꿔가며 거리 시위를 벌인다. 시위를 벌이는 날짜 때문에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시위는 시리아 정권의 내정 간섭에 대한 시민들의 견해 차이 또한 담고 있다.

오래도록 전쟁이 할퀴고 지나간 레바논 정부는 내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 레바논으로 유입되는 난민 구호활동조차 정치색을 지닐까 자제하는 상황이다.

레바논으로 유입되는 시리아 난민은 지난달 24일 기준 7만3393명으로 터키 다음으로 많다. 레바논 정부는 난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 유입이 자국의 정파별 균형을 깨뜨릴 것을 염려한다. 수니파인 시리아 난민 유입이 레바논의 전반적인 수니파 증강과 세력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언론사 무스타크발에 소속된 오마르 하르쿠스(43) 기자는 “정부가 난민을 도우면 아사드 정권을 반대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난민 문제를 관망하고 있다”고 지난달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적했다. 하르쿠스는 전쟁 중에 시리아에 3차례 들어가 취재한 분쟁 전문 기자다.

레바논은 종파별로 권력을 골고루 나눠 세력 다툼을 방지하고 있다.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가 맡는 방식이다.

시리아 사태로 치안도 더욱 불안정해졌다. 아사드 정권은 반정부 인사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국경 지대를 공격하거나 레바논 영토 안으로 침범한다. 하르쿠스 기자는 “최근 시리아 정부군이 레바논의 바알벡 동쪽 지대를 공격했다”며 “탈출한 시리아인을 회유하기 위해 자국으로 돌아오면 용서해준다는 선전용 방송도 국경지대에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터키-시리아 수차례 전운 고조

지난달 9일 만난 베키르 구니아(46) 이스탄불대 유라시아 지역연구소장은 시리아 정부의 외부 도발을 “자국민의 안보 위기를 고취시키기 위한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구니아 소장과의 만남은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 산리우르파 지역을 공격해 전운이 고조된 때였다. 지난 6월에도 시리아 정부군이 터키 전투기를 격추하는 등 시리아 사태 기간 동안 두 나라는 수차례 분쟁을 겪었다.

구니아 소장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떨어지는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인접국을 공격하고 자국민에게는 안보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며 “터키 정부군은 시리아의 이런 전략을 잘 알기 때문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정부는 최근 시리아의 파루크 앗 샤라 부통령을 차기 과도정부 책임자로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구니아 소장은 이에 대해 “아사드 정권을 뒷받침하던 정치 세력을 한꺼번에 끌어내리려는 발상은 위험하다”면서 “학살에 가담한 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권력을 보장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시리아국가위원회(SNC)가 이스탄불에 본부를 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구니아 소장은 “터키가 서구화되면서 중동에 대한 영향력이 낮아졌지만 점차 중동에 대한 입김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시리아 사태에 대한 적극 개입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키는 이슬람주의와 서구 민주주의를 배합한 세속 국가다.

그는 소수 종파인 알라위의 지지를 받는 아사드 정권 통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니아 소장은 “통치력이 낮은 소수 종파 출신일수록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무리하게 국민 요구를 짓누르는 것”이라며 “사회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선 주류 세력이 정권을 차지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위임통치’할 때의 방식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구니아 소장은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프랑스와 영국이 이슬람 국가를 통치하면서 소수 세력에게 권력을 줬고, 그 과정에서 중동의 불안이 고조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하는데 아랍 국가에서는 가장 억눌려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시민혁명이 일어났다”며 “과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시리아 국민 “정권, 자주권 수호 못해” 불만 확산

시리아는 북한과 핵·미사일을 거래하는 불량국가다. 시리아의 핵 시설로 의심되는 건물이 2007년 이스라엘의 폭격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시리아인들은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국가의 주권을 수호하지 못한다는 의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분쟁지역인 골란고원에 대한 점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게 중요 이유다. ‘친이스라엘·친서방적 정권’이라는 얘기다.

시리아국가위원회(SNC) 멤버 무함마드 사틀라(48)씨는 “2008년 이스라엘이 봉쇄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난민을 돕기 위해 해상으로 구호품을 지원했는데 정권은 이스라엘 눈치를 보느라 이런 인권 활동조차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귀화한 시리아인 아브스(45)씨는 “국민의 인기를 끌기 위해 외세에 저항적이고 주체적인 척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에 길들여져 있다”고 했다.

시리아 반정부 운동가들은 미국 정부가 사태에 적극 개입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우방인 이스라엘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는 6일(현지시간)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 상황도 또 다른 이유다.

이스탄불대 베키르 구니아 유라시아 지역연구소장은 “미국 대선 후보들이 표심을 잃지 않으려 국내 정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도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리비아는 나토군의 개입으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됐다.

미국 정부 입장은 다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반정부 단체 간의 조속한 통합을 요구하며 “SNC가 시리아 국민을 보호하거나 대변하지 못 한다”고 비판했다. 아사드 정권 종식에는 동의하지만 통합되지 않는 반정부 단체가 시리아 사태를 장기화한다는 의미다.

<‘유혈의 시리아, 자유와 평화를 꿈꾸다’ 연재를 마치며>



“마르하바!”(안녕을 뜻하는 아랍어)

시리아국가위원회(SNC)의 한 무슬림 여성이 지난달 4일 한국의 아기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아기는 기자와 동행한 한국-아랍어 통역인의 9개월 된 아들 주예준입니다. 늘 심각한 표정만 짓던 시리아의 최대 반정부 연합체 SNC 활동가들도 예준을 볼 때만큼은 해맑게 웃습니다.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아사드 정권이 종식되고 시리아가 민주화되는 날, 이들은 활짝 웃을 것입니다. SNC 멤버 시난의 이름과 전화번호 한 개 들고 떠났던 터키 이스탄불 취재 기간 동안 만난 이들이 벌써 그립습니다. 그들의 웃음을 보고 싶습니다. ‘유혈의 시리아, 자유와 평화를 꿈꾸다’를 5회로 마칩니다. 시리아에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면서.

이스탄불=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