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하락, 수출기업 직격탄] “계약 파기사태 걱정돼요” 강소기업도 원高에 떤다
입력 2012-11-01 18:56
“지난주 계약 분부터 달러당 1150원하던 것을 1050원으로 조정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냉동탑 1개당 1만4780달러에 우리 물건을 사간 해외 바이어들이 1만6190달러를 내야 합니다. 그들의 마진이 10%가량 줄어들죠. 아직 계약 파기는 없었지만 원화 강세가 지속될까봐 걱정됩니다.”
31일 경기도 평택 포승공단 맞은편에 위치한 진성냉기산업 제조공장. 서해안고속도로 서평택 나들목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축냉식 냉동탑(Cold Top)을 제조해 수출하는 업체다.
공장 직원들과 1층 식당에서 제육볶음과 된장국으로 점심을 들던 인문진(56) 사장은 환율 이야기를 꺼내자 미간을 찌푸렸다.
환율이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그의 걱정은 더 많은 듯했다. 스페인·그리스 구제금융과 미국의 재정정책 등 변수가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내년까지 하락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기 때문이다. 2013년 말 환율 전망에 대해 모건스탠리는 달러당 1080원, 씨티은행은 1077원, 비앤피 파리바는 1000원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안정적인 편이었다. 아이스크림 수송 트럭과 같이 상용차 뒤쪽에 냉동보관 설비를 만들어 붙이는 사업으로 직원은 총 30명에 연간 매출은 70억원 정도다.
이 회사는 지난해 국내 아이스크림 제조 3사인 롯데제과 빙그레 롯데삼강의 모든 냉동차량에 축냉식 냉동탑을 공급했다. 축냉식 냉동탑은 기존 디젤 엔진을 사용해 냉각하는 방식과 달리 산업용 전기로 충전해 영하 25도 이하를 유지하게 한다. 배럴당 100달러에 이르는 고유가 시대인 만큼 이 차 7대로 2만8000㎞만 뛰어도 당장 비용이 1500만원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카자흐스탄 호주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자메이카 칠레 등 세계 모든 대륙 10여개 국가에 첨단 전기충전식 냉동탑을 제공한다. 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아시아에서 이 회사뿐이다.
이미 국내에서 딸 수 있는 타이틀은 다 거머쥐었다. 벤처기업 지정, 수출 100만불탑 달성, 세계일류상품 생산기업, 코트라 보증 브랜드 선정 등등. 세계 축냉식 냉동탑 시장에서 진성냉기와 유일하게 경쟁하는 업체는 이탈리아의 콜드카, 프라멕 정도다.
그러나 불경기 속 고환율은 이 회사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인 사장은 “환율이 변해도 우리가 사다 쓰는 철강, 우레탄 등 국내 대기업의 원자재 가격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쟁 이탈리아 제품과의 가격 차이는 19%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그는 “1∼5차 물량 가운데 이미 1차를 가져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바이어가 2차 분부터는 결제를 40일 뒤로 미루자고 연락해 왔다”고 말했다. 진성냉기는 이 때문에 수출보험을 추가로 들어야 했다.
원화 강세와 경기 부진으로 수출기업이 떨고 있다. 특히 외환 관리 경험이 적은 중소 수출업체가 어렵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신흥국 시장을 뚫고 있지만 환율 한방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영등포공고를 졸업한 인 사장은 1981년 롯데제과에 기능직 사원으로 입사해 냉동설비를 다뤘다. 당시만 해도 압축기가 없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것을 수리해 썼다. 그는 직장 10년차였던 91년 사표를 내고 퇴직금 4000만원으로 구로구 시흥상가에서 7평짜리 냉동설비업을 시작했다. 8년 만인 99년 가게를 10배로 키워 자본금 4억원으로 법인등록을 했고, 2006년부터 냉동탑 수출에 주력했다. 창업 20년 만인 지난해에 2000평 부지의 공장을 가진 이 분야 세계 2대 메이커로 일어섰다.
그러나 요즘의 수출 환경은 그에게 벅차기만 하다. 인 사장은 “중소기업의 환율 관리를 돕는 금융제도가 정부 주도로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택=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