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담임도 잘 모르는데 교사들 평가하라고?
입력 2012-11-01 08:52
시행 3년째인 교원능력개발평가의 ‘학부모 만족도 조사’ 항목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담임교사는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학교 교장, 교감을 비롯해 학과목 담당 교사까지 모두 평가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의 A중학교 3학년 학부모인 김모(44)씨는 지난달 29일 학교로부터 “교원평가 학부모 만족도 조사, 모든 분이 반드시 참여 바람, 학교 홈페이지 참조”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평가 문항을 확인한 김씨는 무척 당황했다. 각 문항은 ‘선생님은 학습에 대한 정보를 잘 제공해준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존중해준다’ 등 5가지였는데 해당 교사의 수업을 참관했거나 해당 교사를 알아야 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만족도 조사에는 교사 자신이 작성한 교육활동 소개글이 첨부돼 있었지만, 안면조차 없는 교사의 글만 보고 평가를 할 수는 없었다.
김씨는 결국 아이에게 각 선생님에 대해 일일이 물어본 후 응답을 했다. 김씨는 이날 교장·교감과 함께 국어, 영어, 수학, 원어민 영어교사, 보건교사까지 총 17명의 교사를 이런 방식으로 평가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박모(40·여)씨는 “작년 조사 때는 학교 측이 교장에 대한 평가 항목에 ‘아주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하도록 요청했다”면서 “학부모들은 이 조사가 어차피 형식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잘했다’는 응답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혹시 설문내용이 학교 측에 흘러들어 가면 아이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근거없는 소문도 나돌아 그냥 좋게 답변하는 게 낫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일부 학교는 설문안내 통지문을 통해 ‘좋은 답변으로 선생님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부탁합니다’라고 긍정적인 답변 유도하기도 한다.
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2010년부터 교원능력개발평가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매년 9∼11월 ‘동료 교원 평가’, ‘학생 만족도 조사’ 등과 함께 교과부가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시행중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는 총 1만617개 학교에서 평가가 실시돼 학생 78.9%, 학부모 45.5%, 교원 89.8%가 참여했다.
일선 학교도 조사의 문제점을 알고 있다. 서울 C고등학교 한 교사는 “수업 참관도 하지 않은 부모들이 교사 전체를 평가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그러나 설문 응답률이 저조하면 교육청 감사를 받을 수 있어 어쩔 수 없이 학부모들을 독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1일 “학부모 조사는 수업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자녀의 학교생활 만족도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라며 “부모들이 자녀를 통해 학교 정보를 꾸준히 청취하고 평소 공개 수업 등에 참여했다면 크게 어렵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장은숙 회장은 “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객관적 자료를 아무리 많이 제공하더라도 자녀의 도움 없이는 응답할 수 없게 돼 있다”며 “학부모의 응답 항목은 교사에 대한 평가보다 학교 전반의 운영 등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