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명화 감상, 화가에 얽힌 스토리를 읽어라… ‘그림을 본다는 것’
입력 2012-11-01 18:08
그림을 본다는 것/케네스 클라크/엑스오북스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명화 ‘시녀들’은 스페인 펠리페 4세(1605∼1665)의 지시로 1656년에 제작됐다. 그림에 등장하는 어린 마르가리타 공주는 펠리페 4세의 딸로 훗날 오스트리아 황비가 됐다. 이 그림 앞에 서면 관람객들이 마치 화면 안에 있는 느낌이 든다. 시각적인 인물과 공간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데 충실한 벨라스케스의 화법 덕분이다.
30세에 영국 런던내셔널갤러리 관장으로 발탁될 만큼 탁월한 심미주의자로 평가받은 저자는 한 편의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세심하게 끄집어낸다. 서양미술의 전통과 미학이론은 물론이고 철학 종교 역사 문학 음악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정통 서양화 감상법’이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다.
이 책에 초대된 명화는 16점이다. 저자는 그림 감상의 핵심 포인트로 화가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나는 화가들의 생애를 기억하고, 내 앞에 있는 그림이 화가의 발전 과정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찾아보며, 이 화가의 조수가 그렸거나 회화 복원가의 손길이 닿은 부분이 어디인지 추측한다.” 화가들의 풍성한 에피소드와 뒷얘기를 곁들였다.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눈보라’. 찰스 킹즐리 목사의 어머니가 이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자 터너가 말했다. “나는 이런 장면의 실상이 어떤지 보여 주려고 그렸을 뿐이오. 눈보라를 관찰하려고 선원들에게 나를 돛대에 묶어달라고 부탁했지요. 네 시간 동안 묶여 있으면서 도망칠 생각은 해보지 않았소. 어떻게든 그것을 기록해야 한다고 느꼈지요.”
네덜란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의 ‘화실의 화가’는 작가의 작업 공간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 페르메이르는 가구를 배치하고 커튼을 고리에 걸었다. 의자와 탁자에 천을 걸치고, 가장 큰 벽면에 지도 또는 그림 한 점을 걸었다. 그는 화면을 머릿속에서 미리 완성한 후 이젤 앞에 앉아 자신이 구상한 대로,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일감을 따내려고 스승을 험담한 이탈리아 티치아노 베셀리오(1487∼1576)의 ‘그리스도의 매장’, 우울증을 딛고 작품에 몰입한 영국 존 컨스터블(1776∼1837)의 ‘뛰어오른 말 습작’, 청각 장애의 침묵 속에서 사건의 핵심을 뽑아낸 스페인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1808년 5월 3일’, 파산과 고독 속에서 명작을 그려낸 네덜란드 렘브란트(1606∼1669)의 ‘자화상’ 등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명화의 조건은 무엇인가. “위대한 미술 작품이 영혼에 활력을 주듯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어야만 한다.” 사회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명화 감상법은? “전체적으로 한 번 본 후 부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색채는 조화로운지, 소묘는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는지 관찰하면서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엄미정 옮김.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