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책 읽는 사회

입력 2012-11-01 18:35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한 사람당 평균 독서량은 0.8권. 문맹률이 낮기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 나라 국민이 1년 동안 책 한 권을 다 못 읽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성인 인구 10명 중 4명은 아예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니 정부가 국민 손에 책을 쥐어주겠다고 팔 걷어붙이고 나설 만도 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를 ‘독서의 해’로 정했다. 국민 독서량 5% 증진을 목표로 하루 20분, 한 해 12권의 책 읽기를 통해 대한민국을 흔들어 깨우겠다고 나섰다. 독서왕 뽑기, 독후감대회, 저자와의 만남, 공연, 독서여행 등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각종 행사를 벌였다. 특별히 독서의 계절을 맞아 지난 9월에는 8300여건의 행사가 각지에서 치러졌다. 그 숫자만 놓고 보면 5% 달성도 어렵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 행사들이 지난해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는 10명 중 4명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대부분 행사가 이미 열정을 갖춘 독자들이나 반길 내용인데다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그야말로 행사를 위한 행사인 것 같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은 습관이다. 습관은 어떤 행동이 반복되어 이뤄지는데 그 반복에는 계기가 필요하다. 국민 한 사람이 1년 평균 40권을 읽는다는 일본의 경우 근대사의 시작인 메이지 시대의 번역서가 그 계기라 할 수 있다. 난생 처음 서양의 역사, 철학, 과학, 문학을 책으로 만나면서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책들을 국민 손에 쥐어주고 읽게 한 것이 메이지 정부였다. 요란한 캠페인 대신 번역국을 설치하고 새롭고 다양한 것을 번역해 국민 앞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일본인 손에 책이 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출판시장 규모는 약 37조원이다. 우리의 14배로 압도적으로 크다. 그러나 크기보다 부러운 것은 메이지 정부의 정책적 번역사업에서 이어져온 번역문화와 1939년 이와나미 신서로 시작된 문고본의 역사가 만나 일궈진 출판시장의 폭과 깊이다. 플라톤 전집부터 해리포터의 마법 입문서까지 다양한 맛의 좋은 책들이 서가에 즐비하고 그것을 골라먹는 재미 또한 크다. 그러니 보고 또 보고 습관처럼 책 읽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1년짜리 호객행위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면 우리의 부실한 서가부터 공을 들여 채워야 할 것이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