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배준호] 저성장 시대의 복지정책

입력 2012-11-01 18:28


근래 복지지출 증대가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와 주목받고 있다.

1993년에 노벨상을 받은 경제사학자 더글러스 노스 등은 사회간접자본과 연구개발, 법제 정비 등의 전통적인 공공재에 교육, 사회보험, 사회서비스지출 등을 더한 공적지출 증대가 신자유주의론자의 주장과 달리 경제성장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더글러스 노스 외, ‘폭력과 사회질서’, 2009년). 그동안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주요국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치안유지에서 복지강화와 기회부여로 바뀌면서 복지지출이 증가해 왔다.

우리도 1998년 이후 좌파성향 정부에서 복지지출이 늘었으나 18대 대선을 앞두고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무상보육과 고등학교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기초노령연금 인상, 아동수당, 취업준비금과 구직촉진급여 신설 등 정치권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거론되는 사업에는 국내총생산(GDP)의 2∼3% 규모의 돈이 든다. 국민들 반응이 시큰둥한 것은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GDP의 1%인 연 13조원 마련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는 저성장 기조 아래서 나라살림을 꾸려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GDP의 19∼20% 수준인 현재의 조세부담률을 유지하면서 과세구조를 바꾸고 복지지출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조세와 복지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면서 사회통합을 강화하고,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각종 법제와 규제 등 ‘너무 많은 보이는 손’을 정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는 실패한 복지국가인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모델을 답습하지 않는 길이다.

“이들은 얼마나 많이 과세하여 복지에 쓸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 ‘연금국가’였으나 어떤 방식으로 많이 과세하고 어떻게 복지지출의 내용과 구조를 구성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 ‘복지국가’는 아니었다. 부자와 대기업 과세를 강화하여 소수의 어려운 이웃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재분배는 취지와 달리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덜 누진적인 방법으로 과세하고 교육과 재훈련, 사회서비스 등 사회적투자에 나서야 형평성과 효율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 이때 여성의 인권을 높이고 출산을 지원하며 노동시장 참가율을 높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노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난 10월 12일 이탈리아 피렌체에 위치한 대학원대학인 유럽대학연구소(European University Institute) 정치경제-공공정책 주임인 S 스타인모(Sven Steinmo) 교수가 한신대학교에서 열린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 기조강연에서 한 얘기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북구 모델을 오래 연구해온 스타인모 교수는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소개하면서 상당수 전문가들이 지닌 오해에 대해 지적하였다.

그는 이어 “북구는 영국, 미국보다 빈곤율과 불공평도가 낮고 사회적지출이 많으며 출산휴가가 충실하다. 재정수지가 흑자여서 국가채무도 적고 연구개발투자 비중이 높으며 1인당 GDP와 삶의 만족도까지 높다. 자본과 투자에의 중과세와 현금이전 위주의 재분배보다 국민의 신뢰에 기반을 둔 모든 계층에의 거의 비례적인 세부담, 균등한 복지지출의 사회적투자를 추구한다. 세부담은 기업보다 개인에게 집중되며 근로자와 중산층이 공평하게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우리는 북구와 사회발전의 진화사가 달라 이들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 일본 같은 자유주의 체제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은 북구 국가들보다 복지수준이 떨어진다. 지금 후보 진영과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많이’가 아닌 ‘어떤 방식으로 많이’에 관심을 갖고 ‘현행 복지지출의 내용과 구조의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 작업이 먼저’라는 인식부터 갖는 것이다. 아울러 복지의 각 분야에 깔아놓은 ‘너무 많은 정부의 손’에 대해서도 축소 등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