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의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삼위일체 하나님 비판’에 대해

입력 2012-11-01 18:13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초기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고백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경적이며 초기 기독교 사상이 아니다.”

“삼위일체는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격적인 신 개념 자체가 하나님의 유일성을 부정한다.”

“무엇을 믿든지 간에 진실 되게 믿으면 되지 않나요?” 흔히들 하는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종교에 대한 진정한 태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는가’이다. 아무리 진정한 마음으로 믿는다고 해도 거짓을 믿는다면 헛수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를 붙드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우리 주위에 기독교의 진리를 공공연히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도올 김용옥 교수다. 그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정한다. 그는 ‘기독교성서의 이해’에서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말은 복음서의 개념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와 전혀 무관한 철학적 사유의 장난”이라고 비하한다.

도올은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경적이고 초기 기독교 사상이 아니며,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철학적인 이유로 삼위일체를 부정한다. 도올은 신을 인격체로 보게 되면 그 신 이외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유일신관은 성립될 수 없으며 삼위일체 신관도 무너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도올의 이러한 주장은 합당한 것인가. 사실 도올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첫째,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적이며 확실한 초기 기독교 사상이다. 비록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후대에 성립된 것이지만 내용은 이미 신약성경의 핵심으로 처음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지만 그 위격은 세 분,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1+1+1=1’이 아니라 ‘1×1×1=1’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도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고, 성자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며 성령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지만, 그 한 하나님 안에는 각각 개별적인 의지와 인격을 가지신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삼위일체의 증거를 들면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 또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는 하나님이시다’는 분명한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빌 2:6∼8)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5∼17). 또한 초기 교부들의 글에서도 삼위일체 개념이 나온다. 2세기 초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에베소로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이라고 말했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우리가 한 분 하나님, 한 분 그리스도, 우리에게 부어진 은혜의 한 성령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런 증거는 너무나 많다. 따라서 이 모든 증거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삼위일체의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지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교리가 AD 4세기 니케아 회의에서 정치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도올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둘째, 하나님이 인격신이기 때문에 삼위일체 유일신을 말할 수 없다는 도올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도올에 의하면, ‘유일신에게 아버지와 같은 인격성을 부여하게 되면 그 인격성은 반드시 그 신을 제외한 타자와의 관계성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그 신은 유일신이 아니라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신을 인격체로 보게 되면 그 신 외의 다른 존재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유일신관은 성립될 수 없으며, 삼위일체 신관도 무너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도올의 주장과는 달리 인격신은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삼위일체 하나님을 잘 설명해 주는 토대가 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신(God)에 대한 철학적 정의는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최고의 존재가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완벽하고 최고의 존재는 그 존재의 본질상 오직 한 분뿐이어야만 한다. 완벽한 최고는 둘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한 분뿐인 유일하신 분이어야만 한다.

또한 그 유일한 하나님은 도덕적으로도 완전하다.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격체로서 사랑하는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인격적인 행위로서 관계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만 한다. 사랑의 본질은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만일 하나님이 한 분뿐이면서 한 인격만 가졌다면 그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교제의 대상이 없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가진 신관이 이슬람의 알라이다. 알라는 한 분뿐이면서 하나의 의지만 가졌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른 인격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런 신은 완전하고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없다. 도올이 비판하는 신은 사실상 이슬람의 신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은 유일신이면서도 인격성의 딜레마를 단번에 해결한다.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이기에 오직 한 분뿐이다. 또한 그 하나님은 완전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사랑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한 분뿐이면서 동시에 도덕적 사랑을 할 수 있는 신은 본질적으로 유일신이면서도 세 인격을 가진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면서도 세 인격을 가졌기에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다.

서로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 공동체에 꼭 필요한 영성이 아닌가 싶다.

(서울 큰나무교회· 기독교 변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