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唐 유지기 ‘사통’ 번역 오항녕 “역사는 해석보다 사실 기술이 중요”
입력 2012-11-01 17:59
당나라 때의 사관(史官) 유지기(劉知幾·661∼721)가 남긴 ‘사통(史通)’은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룬 인류 최초의 역사학 개론으로 평가된다. 당 고종 때인 680년, 약관의 나이로 과거 급제한 그는 측천무후 당시 사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편찬 사업에 참여한 관헌들이 사사로이 뇌물을 받고 실록 내용을 바꿔주거나 궁궐 밖에 나가 그 내용을 발설하자 관직을 내놓고 ‘사통’ 저술에 몰입한다.
훗날 조선왕조실록 편찬을 맡은 조선의 실록청에서도 ‘사통’의 방법론을 준용했을 만큼 ‘사통’은 우리 역사 기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꼼꼼한 주석을 달아 1000여 쪽에 이르는 ‘사통’(역사비평사)을 번역 출간한 오항녕(51·사진)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1일 전화인터뷰에서 ‘사통’의 현재적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근대 역사학은 역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유지기가 말한 세 단계 가운데 마지막 단계일 뿐입니다. 유지기는 이에 앞서 기록 자체를 어떻게 확보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느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요. 역사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고민했던 겁니다.”
그는 해석 중심의 역사 기술 방법에 앞서 사실(史實) 중심의 기술 방법이 좀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해석 이전에 사실(史實)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합의가 전제돼야 합니다. 요즘 여야의 북방한계선(NNL) 공방과 관련해서도 ‘사통’은 시사점을 주고 있지요. ‘사통’은 실록을 기록할 때 왕을 비롯해 그 누구도 기록을 열람할 수 없도록 했어요. 그 왕조 대(代)에서는 사관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실록 내용을 볼 수 없었지요. 오직 사관만이 서고의 문을 여닫을 수 있는데 그 역시 왕위 즉위식 같은 문제를 참고용으로 필사할 수 있었을 뿐, 군주에 관한 비밀기록은 당대엔 아무도 볼 수 없었지요. 역사 해석에 앞서 우선 경험 자체를 온전하게 보존하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죠.”
오 교수는 “유지기는 공자의 ‘춘추’나 사마천의 ‘사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원래의 역사 기록에 없던 문장이 들어가거나 날짜와 연도순이 맞지 않는 경우를 지적했지요. 공자나 사마천의 권위에도 기죽지 않고 역사서의 문제점을 편견 없이 정리한 것이 유지기의 위대함입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