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잔혹한 사회관습은 생존을 위한 산물… ‘악마를 찾아서’

입력 2012-11-01 17:59


악마를 찾아서/팀 부처/에이도스

2009년, 그가 서아프리카를 여행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다.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기니 3개국은 쿠데타와 반쿠데타, 내전, 소년병, 블러드 다이아몬드, 정령숭배 등 온갖 살벌한 어휘로 묘사되는 지구상 가장 위험한 나라들이 아닌가. 이런 사지로 그를 내몬 건 직업적 자존심이었을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서 종군기자로 뛰었던 저자 팀 부처는 라이베리아 독재자 찰스 테일러 정권의 잔혹한 살인을 고발한 기사를 쓴 탓에 살해 협박을 당한 전력이 있다. 이 바람에 라이베리아 재입성을 주저했고, 2003년 테일러의 망명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놓친 ‘상처’가 있다. 친구인 기자 2명이 시에라리온 취재 중 정부군에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결국 ‘구두 속에 낀 돌멩이’ 같은 부채 의식을 털기 위해, 그리고 아내의 간청에 보험까지 충분히 든 뒤 떠난 서아프리카 3개국 여행기는 예사롭지 않다.

우선 형식이다. 바로 1935년 서른 살의 나이로 당시로서는 외부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들 3개국을 여행했던 영국 여성 그레이엄 그린의 일정을 따라가는 것이다. 이미 도로가 나 차로 갈 수 있는 길임에도 저자는 굳이 그녀 일행의 행적을 따라 위험천만한 정글 길을 고집하기도 한다.

내용면에서도 싸구려 아프리카 여행기와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영국 식민지였던 시에라리온, 미국 해방 노예들이 건설한 흑인공화국 라이베리아, 프랑스 식민지 기니 등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3국 역사에 대한 통찰과 인류학적 시선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시에라리온 제2의 도시 보에선 중국의 건설투자에 따른 망치소리가 요란하다. 하지만 인부와 요리사는 물론 음식마저 중국 현지에서 조달하는 ‘속빈 중국 투자’를 현지인의 목소리를 통해 고발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상징되는 시에라리온의 불행은 다이아몬드 광맥이 땅속 깊숙이 감춰진 게 아니라 지표 가까이, 그것도 홍수에 의해 곳곳에 퍼지면서 사람의 접근을 통제하는 것에 실패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수출 원동력인 농업에 종사해야 할 일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광산으로 몰려들면서 국가는 파산선고를 받아야 했던 것이다.

미국의 해방노예들이 건너가 건설한 흑인공화국 라이베리아의 근현대사를 재구성함으로써 현대 서아프리카의 비극의 근원을 밝히기도 한다. 강을 건너 기니로 갈 때 아프리카의 위험천만한 기생충인 ‘기니벌레’가 떠다니는 강물이 몸에 튈까 초긴장을 하는 모습에선 르포의 재미가 읽혀진다.

이들 3개국을 종횡무진 탐험하는 내내 저자의 관심을 일관되게 끄는 건 ‘악마의 비밀사회’ 관습이다. 이곳에선 소년과 소녀들이 외딴 숲 속에서 몇 달 혹은 몇 년간 굶주림과 갈증과 곤경을 참아내며 훈련을 받은 후에야 성인으로 다시 태어나 가족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서 ‘악마’로 불리는 마술사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

저자는 엄격한 위계질서, 침묵의 규율, 잔혹한 입문식 등으로 상징되는 서아프리카의 비밀 사회 관습이 공동생활을 하지 않고서는 생존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비롯된 생존을 위한 산물이라는 진보적 식견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근대민족국가가 형성됐음에도 이런 부족집단의 전통이 이어져온 것이야말로 발전을 저해하고 내전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취재를 통해) 흥미로운 이야기는 많았지만 내가 그곳의 격동적인 과거와 현재의 여러 단층선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29쪽)

이런 자기반성과 이를 넘어서려는 욕구는 현장감과 인문학적 깊이를 두루 갖춘 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여담 하나. 저자는 이 여행을 마친 뒤 작가로 전업한다. 이 책의 유려한 문장에서도 작가적 기질을 느낄 수 있다. 책의 화룡점정은 그런 글맛을 오롯이 살린 번역이다. 2011년 영국 조지 오웰상 후보작. 임종기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