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규태 (10) 아마존 밀림속 교회서 만난 그리스도의 자녀들

입력 2012-11-01 17:47


‘몽고반점의 역사를 찾아서’란 프로젝트로 남미 답사 여행 중 나는 미국 하버드대 선교팀에 끼어 아마존 상류의 오지 마을 몇 군데를 다녀온 적이 있다. 무척 위험한 밀림 탐방이었으나 어쩐지 가보고 싶었다.

페루의 파우칼탐보를 거쳐 필코파타르로 가는 길은 안데스 산맥의 동쪽 언덕배기로 산허리를 따라 급류를 타야 한다. 잘못하다가 물에 빠지면 피라코차라는 식인류 고기떼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대단한 모험여행이다. 나는 하나님의 든든한 ‘빽’을 믿고 떠났다.

먼저 아마존 상류의 강을 탔다. 이 강 줄기는 ‘날토 마드레 데디오스’라고 부르는데, 이 고장 말로 ‘성모(聖母)의 다소곳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 요동치며 절벽에 부딪힐 것 같아 몸이 움츠러들곤 했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하지만 긴장한 듯한 내 표정을 보고 인디오 뱃사공이 헤엄치는 시늉을 하며 수영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폴스푸에스토(물론)” 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막상 이런 급류에 빠진다면 도저히 헤엄쳐 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배는 요란스레 모터 소리를 내면서 황토색으로 변한 넓어진 강을 가르며 진보테우아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구성진 삼바 리듬이 머리 위에서부터 따가운 볕살과 함께 사정없이 내려 쏟아졌다.

외길을 따라 아셈블리라는 교회로 갔다. 근처에 있는 가톨릭 성당에 비하면 초라한 목조건물이었지만 서른 평 남짓한 교회 안에서 입추의 여지없이 모인 원주민들이 삼바 리듬에 맞춰 손을 높이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일정한 동작으로 춤을 추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크게 은혜를 받았다.

교회에서 인디오 교인이 했던 짤막한 고백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허기 때문에 교회를 찾았다는 것이다. 배고파 보지 않은 사람은 배고픔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모를 것이다.

2년 전 귀국했을 때 나는 배고픔만큼 진실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었다. 교직생활을 40년이나 한 사람이 연금도 탈 것이고 설마 끼니 해결을 못하겠느냐고들 생각했을 것이다. 연금도 파산 당시 날렸고 구걸할 수도 없어 아무도 안 믿겠지만 기아선상을 헤맨 적도 있었다. 그 무렵 젊은 희곡 작가가 아파트에서 기아로 죽은 사건이 화제가 됐다.

그들은 가난하면서도 행복해보였다. 특히 주님을 믿는 토착민들은 주어진 삶에 너무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

아마존에서 생활하려면 견뎌야만 하는 두 가지가 있다. 의료와 치안이다. 하지만 믿는 자에게는 이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 나름의 공동체 의식이다. 문명사회의 우리 신앙인들이 배웠으면 하는 덕목이 적잖이 있었다.

페루의 기독교를 믿는 인디오들은 그들의 땅이 바로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의 땅이라고 믿고 산다. 안데스 답사 중 교회에 나가는 한 인디오가 그런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나스카의 어느 산정으로 나를 안내한 적이 있다.

아득히 거친 들판이 내려다보였다. 들판 도처에는 눈부시게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돌들이 커다란 기하도면처럼 널려 있었다. 그 중앙에는 십자가 모형이 아스라하게 명멸했고 그 양쪽에 날개와 같은 것이 붙어 있었다. 머리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장방형으로 그 왼쪽에 마치 뿔처럼 돌출된 굵은 선이 있으며 그 밑에는 일직선이 수없이 그어져 있다. 완만한 기복의 대지가 오싹하리만큼 기이한 풍경을 자아내며 시야 가득 펼쳐진다.

하지만 지상에 내려가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고, 어떤 형태를 이루고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나를 안내한 인디오는 자연창조의 오묘함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자고 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이로다.”

나는 안데스, 아마존 편력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깨우치게 되었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