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사회-뒷짐 진 이웃 자살 방조하는 대한민국

입력 2012-10-31 19:00


부산에서 10대 소녀 3명이 동반자살했다. 그 아이들에겐 징후가 여러 차례 있었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자살을 막을 기회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아이들을 깊이 관찰하고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 않았다. 전날에는 70대 노인이 치매에 걸린 아내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불거졌다. 혼자 힘겹게 아내의 치매와 싸우다 지쳐 포기할 때까지 우리 사회안전망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무관심과 허술한 안전망이 자살을 방조하는 셈이다.

◇수차례 자살 징후 방관했다=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정모(16·중3 중퇴) 윤모(17·고3) 김모(19·재수생)양 등 3명은 지난 30일 오후 10시30분쯤 부산 광안동 한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함께 투신해 숨졌다. 부산과 대전, 광주에서 부모와 살던 이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만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윤양은 지난 8월에도 정양과 부산의 한 여관에서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다가 업주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윤양은 평소 가정형편을 고민하며 인터넷 자살 사이트를 들락거렸고, 윤양의 오빠는 컴퓨터에서 자살 사이트를 삭제하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윤양은 자살예방 상담을 받거나 우울증 치료 등 적극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다. 정양은 중학교를 중퇴한 뒤 주로 집에서 외톨이로 지내왔다. 내성적이었던 정양도 우울증 치료나 상담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김양은 3년 전부터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이들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끌어안는 따뜻한 안전망은 없었다. 게다가 이들이 투신한 아파트의 경비원은 전날 자정쯤 옥상에서 술을 마시고 웅크리고 있는 3명을 발견했지만 경찰에 인계하지 않고 이불을 건네줬다. 아파트 옥상 출입문은 잠가야 하는데도 열려 있었다. 여러 안전망에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었다.

◇자살예방 위한 종합적인 시스템 필요=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 8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국내 자살자는 1만5566명. 매일 42.6명이 목숨을 끊고 있다.

자살은 지난해 10∼39세의 사망원인 1위, 40∼59세 사망원인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청소년 사망자 중 13%, 65세 이상 노인 10만명 당 81.9명이 자살을 선택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자살에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자살의 원인은 다양한데 이를 막을 사회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사회의 기초 안전망을 광범위하게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9일 서울 문래동에서 치매 아내를 살해한 이모(78)씨의 경우 치매 노인에 대한 안전망이 부실하기 때문이었다. 이씨 주변에 치매 노인 치료나 그들의 아픔을 같이할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학교폭력에 휘말려 어린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학교의 시스템 문제가 근저에 깔려 있다. 학교폭력을 해결하지 않으면 어린 학생들의 희생은 잇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삶이 어려워지고 각박해질수록 자살률은 높아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증요법보다는 복지, 교육 등 사회 전반적인 안전망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미나 이사야 기자, 부산=윤봉학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