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사회보험… 양극화만 키운다

입력 2012-10-31 20:53


음식점 주방보조로 한 달에 120만원을 버는 50대 주부 안모씨. 10년 넘게 일했지만 국내 4대 사회보험(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중 안씨가 혜택을 받고 있는 건 건강보험 하나뿐이다. 그것도 직장 다니는 남편의 ‘피부양자’ 자격이다. 한때 국민연금 가입을 고려했지만 한 달 보험료가 10만원이 넘는다는 말에 포기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직장가입자는 고용주·근로자가 보험료를 절반씩(임금의 4.5%씩) 분담하는 반면, 지역가입자는 가입자가 전액(9%)을 부담해야 한다. 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안씨는 직장가입 대상자이지만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는 한 가입은 불가능하다. 안씨는 “어느 식당주인이 주방보조 보험료를 내주겠느냐”며 “국민연금은 내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대선을 앞두고 복지정책의 핵심수단인 사회보험 개혁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회보험이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를 보험제도 바깥에 방치하면서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다. 근로복지공단·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공단 등 사회보험 관련 3개 공단의 6개 노조가 사회보험개혁을 요구하며 31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공동 결의대회를 갖고 하루 파업에 돌입했다. 사회보험 노조의 공동파업은 사상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안씨와 같은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를 대략 1500만명으로 추정한다.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는 약 3000만명(18~59세 인구). 하지만 이 중 실제 보험료를 내는 납부자는 1500만명으로 절반에 불과하다. 경제활동인구(약 2500만명)의 대략 60% 수준이다. 나머지 40%는 노후보장의 가장 기초적인 제도인 국민연금의 가입단계에서 배제되고 있는 셈이다.

더 심각한 건 소득과 고용 상태에 따라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이 중위값의 3분의 2 이하인 저임금 근로자의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무려 62.3%인 반면, 고임금 근로자(중위값의 2분의 3 이상)의 경우 미가입률은 4.6%밖에 안 된다. 고용보험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저임금(32.5%)과 고임금(90.5%)의 미가입률 격차는 60% 포인트 가까이 벌어진다.

비정규직 차별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국민연금의 경우 정규직 근로자 가입률은 79.6%(직장가입자만 포함), 비정규직은 절반에 불과한 40.5%였다. 고용보험도 정규직(78.3%)과 비정규직(45%)의 격차가 뚜렷했다. 산재보험의 경우에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57%(약 1400만명)만 혜택을 받고 있다.

가입자가 전부 실제 보험 혜택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입자 중에서도 보험료 체납 등의 이유로 실질적으로는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는 꽤 많다. 지난 6월을 기준으로 건강보험료 체납건수는 154만1000건(2조418억원), 체납으로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올해 기준 187만1000명이었다.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2008년 기준 12%가 보험료를 체납했다.

국민연금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당장 은퇴를 시작한 750여만명의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 중 국민연금 납부자는 49.2%인 373만명. 만약 현재의 국민연금 미가입자를 방치하면 이 수치는 줄어들 가망이 없다. 국민연금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 비율은 29.7%, 2060년이 돼도 72.6%에 머물 전망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1960년대에 ‘연금 100%’ 시대를 열었던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100년 이상 뒤처지는 셈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이용하 연금제도연구실장은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저임금 근로자 등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사회보험 가입에서 제외되면서 복지의 양극화, 노후보장의 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