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깊어가는 서민들] 현실과 동떨어진 빈곤가구 지원정책… “기름보일러·LPG는 지원대상 아닙니다”

입력 2012-10-31 18:46


서울 관악구 삼성동 무허가촌에 살고 있는 이모(77) 할머니는 매년 겨울이 두렵다. 최근 기온이 떨어지면서 23㎡(7평) 남짓 주택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지만 가스가 아까워 보일러를 켜지 못하고 있다. 무허가촌인 할머니 집에는 도시가스가 연결돼 있지 않아 프로판가스(LPG)를 이용한다. 그러나 LPG는 정부의 에너지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겨울철 혹한에 시달려야 하는 ‘에너지 빈곤층’의 시름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저소득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마저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가구를 말한다. 최근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이들의 난방비 부담은 더 커졌지만 정부의 에너지 지원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에너지 복지 현황분석 및 체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난방비로 지출한 ‘에너지 빈곤 가구’는 전체 12.4%로 집계됐다. 이들 중엔 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이 포함된 가구도 많았다. 에너지 빈곤 가구 중 노인 가구는 32.7%, 장애인 가구는 21.3%로 조사됐다. 특히 소득 하위 10%인 1분위 가구 중 아동 가구(155만3800원)나 장애인 가구(92만8000원)는 에너지 비용이 일반 빈곤층 평균(85만8700원)을 웃돌았지만 노인 가구의 경우 81만4200원으로 평균보다 낮았다. 보고서는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은 오래 집에 머물기 때문에 난방비가 일반인보다 많이 드는데 노인 가구의 경우 절약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추위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현재 정부에서 시행 중인 에너지 지원 정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광열비 지원과 전기·가스 요금 할인 등이 있다. 하지만 한국전력공사나 한국도시가스,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관에서 할인 혜택 등 에너지 지원을 해주다 보니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급기관의 예산이 줄어들면 지원 규모가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지원 대상 기준의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에너지 지원 정책은 가스와 전기 비용을 감면해 주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 빈곤 가구의 36.4%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어 정부 지원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등유나 LPG를 사용하는 가구도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도시가스관이 들어오지 않는 저소득 임대가구나 계량기가 없는 가구, 난방시설 없이 전기장판에 의존하는 가구도 에너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에너지 지원이 기초생활수급자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에너지 복지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31일 “소득이 적다고 난방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며 “에너지 빈곤층에게도 기본적인 생존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