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가 된 연쇄살인범 VS 끝까지 포기 않는 형사… 박시후·정재영 주연 ‘내가 살인범이다’

입력 2012-10-31 17:37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사건. 하지만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끝났다. 사건 담당 형사 최형구(정재영 분)는 범인을 눈앞에서 놓친 죄책감과 분노로 몸부림친다. 그리고 2년 후,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힌 이두석(박시후 분)이 ‘내가 살인범이다’라는 자서전을 출간한다. 연쇄살인범은 수려한 외모와 말솜씨로 스타가 되고, 형사는 어떻게든 그를 잡으려 한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는 자극적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코미디와 가족애, 액션, 미디어에 대한 풍자 등을 맛깔나게 버무렸다. 살인범과 형사의 심리전이 팽팽하고 줄거리가 탄탄하다. 배우들의 캐스팅도 성공적이고 연기도 좋다. 특히 액션 장면은 살아 꿈틀대는 산낙지처럼 생생하다. 공소시효가 지난 시점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라 살인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격렬한 추격·격투장면에서 종종 등장하는 잔혹한 화면에서는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8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 정병길 감독, ‘살인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다

‘살인의 추억’을 보러 극장에 갔는데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영화를 보고 있었다. 문득 ‘그가 범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가 진범이라면, 그리고 잡히지 않은 채 공소시효가 끝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 사람이 내가 살인범이라고 고백하는 자서전을 낸다면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만약 잘 생긴 범인이 눈물을 흘리며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여질까.

정병길(32) 감독은 시나리오를 집필하러 제주도에 내려갔다. 단숨에 3분의 1가량을 완성했다. 그러나 후반 몇 장면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는 “너무 외로웠다. 술 담배 노트북에만 의지했다. 너무 많이 피워서 서울에 올라오면서 담배를 끊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형사 역할로 정재영(42)을 생각했다. ‘아는 여자’ ‘공공의 적’을 보고 반해 배우를 연구하며 썼다. 그가 결정되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해볼만하겠다 싶었다. 이두석은 새로운 인물이었으면 했다. 영화를 안 해본, 그러면서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를 찾을 수 있을까 했다. 박시후(34)를 처음 본 순간 “영화 속 이두석이 걸어온다” 싶었고, 무조건 캐스팅했다. 그는 “두 배우가 없었다면 영화의 수준이 엄청 떨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전에 액션배우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액션스쿨을 다녔다. 첫 작품이 2008년 스턴트맨의 세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우린 액션배우다’였다. 이번 작품이 상업영화로는 데뷔작이다.

액션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 만든 작품답게 이 영화에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액션 장면이 꽤 등장한다. 두 인물이 좁은 골목길과 건물 사이를 질주하는 도입부의 추격 장면은 관객이 쫓는 자와 쫓기는 자가 된 듯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 119구급차와 3대의 승용차가 뒤엉켜 도로 위를 달리는 장면에선 배우들이 직접 차량에 매달려 몸싸움을 벌인다. 대형 활어 수조트럭을 동원한 후반부 액션도 인상적이다.

# 적역(適役) 만난 박시후와 정재영

선한 표정으로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 짓는 표정이 섬뜩하다.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살인범 이두석의 이미지였다. 시사회 후 캐스팅이 잘 됐다는 평이 쏟아졌다. 박시후의 영화 데뷔작이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로 지쳐있을 무렵 시나리오가 들어 왔다. 보지도 않고 무조건 두 달은 쉰다고 했다. 그냥 한 번 읽어만 보라는 말에 책을 펼쳤는데 대본에 몰입이 됐다.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다. 데뷔 초부터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이중적인 성격을 작품에서 보인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정재영 선배가 캐스팅됐다고 해서 ‘그럼 난 살짝 묻어가도 되겠네’ 했죠. 하하.”

와이어를 매다는 액션신도 있었지만 준비에 시간이 더 걸린 것은 수영 장면이었다. ‘공주의 남자’가 종영된 후 이틀 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몸을 만들 시간이 없어 틈나는 대로 하루 1∼2시간씩 빨리 걸었다. 3주 전에는 탄수화물 섭취를 안 했고 3일 전엔 물도 안 마셨다. 최상의 몸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다이빙을 했더니 찬물이 아닌가.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찬물에 들어갔더니 머리가 핑 돌았다. 10분만 있어도 차가워서 못 있겠는데 10여 시간을 촬영했다. 영화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정재영은 의외로 형사 역할이 처음이다. 촬영 첫 날부터 열흘 동안 도입부의 비 오는 밤 액션 장면을 찍었다. 적응이 안 된 시기라 몸이 힘들었다. 와이어에 매달린 채 대형 어항에 몸을 던지는 연기를 하다가 다치기도 했다. 후반부에 나오는 두 번째 ‘100분 토론’ 장면은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장면이다. 직접 보면 선하게 생겼다, 평범하게 생겼다고들 한다. 그래서 배역을 맡을 때 어디에도 잘 안 어울린다는 얘기도 듣는다. 악역은 악역대로, 멜로는 멜로대로 너무 순박하지 않느냐고들 한다. “그래도 좋은 점이라면 감독이 이 얼굴로 여러 역할을 실험할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것 아닐까요. 하하.”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