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오일환] 공탁금 피해 해결을 위한 제언
입력 2012-10-31 19:24
“정부는 관련 자료부터 확보해야… 대선 후보들의 적극적인 해결의지 절실하다”
2009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법무성 관계자들과 강제동원 노무자의 공탁금 자료 입수 문제를 협의할 때였다. 일본 측이 공탁금 관련 문서를 우리 정부에게 제공하겠다고 처음 밝히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 후 입수된 공탁금 문서를 분석한 결과 실제 노무자의 공탁금은 1046만엔에 불과했고 나머지 2489만엔은 개인과 법인 명의의 유가증권이었다.
국민일보가 기획보도한 일련의 공탁금 관련 기사는 바로 이 유가증권에서 출발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 등이 일제의 식민지 착취기업과 전범기업 등에 투자한 주식이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진 것이다.
공탁금은 강제동원 노무자들의 미수금이다. 일제는 전쟁 중 군수기업의 비용지출, 인플레이션 억제, 전비충당금 확보 등을 위해 각종 수당, 후생연금, 우편저금, 보국채권, 보험 등의 명목으로 조선인 노무자의 임금을 공제하거나 강제 적립시켰다. 전후 극히 일부 기업이 미불 임금과 수당 등 미수금의 일부만을 당국에 신고한 것이 바로 공탁금이다.
일제시대 강제동원 피해자는 현재까지 크게 네 차례나 피해를 봤다. 1차 피해는 일제와 전범기업 등에 의한 강제동원과 가혹한 노동, 임금착취, 인권유린이다. 2차는 패전 후 공탁이라는 교묘한 방법으로 미불금과 채무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 해방 직후 이와테(岩手) 등에서 조선인단체가 미불임금 지불을 요구하자 이 현상이 일본 전역에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후생성의 지시가 공탁이었다. 공탁제도를 이용해 채무이행을 금지시킨 것이다. 이후 기업은 공탁으로 모든 책임이 끝났고, 일본 정부는 채권자의 거소가 불확실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뿐이라고 둘러대다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채무가 말소되었다고 주장했다.
3차 피해는 주일·주한 미군정과 미국이 조선인 미불금과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생겼다. 한때 주일·주한 미군정은 일부 미불금을 미군정 계좌에 예탁시킨 뒤 지불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방기하고 말았다. 공탁금 문제도 결국 일본 정부에 그대로 인계되었고, 개인청구권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은 것이다.
4차 피해는 한일협정과 우리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에 발생했다. 당시 우리 정부와 일본은 개인청구권 문제를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큼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고 위안부, 사할린억류 한인, 원폭피해자, 사망·행불자, 유해봉환,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문제를 간과했다.
공탁금 등 미수금 피해를 해결하려면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갖고 있는 미불금 관련 자료를 최대한 입수해 분석한 뒤,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지금까지 입수된 공탁자료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 공탁을 하지 않은 기업과 청산기관 등의 자료도 빠져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은행, 후생노동성, 유초(郵貯)은행, 우편저금·간이생명보험관리기구 등이 관리하고 있는 공탁금, 후생연금 탈퇴수당, 각종 우편저금 등 미불금이 피해자와 강제동원 희생자를 위해 쓰여질 수 있도록 한·일 정부가 협의할 필요가 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 등의 유가증권은 당연히 국고로 환수하여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지원금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 유해봉환 문제, 국내 동원 피해자와 생환자 문제는 한일협정 당시와 그 이후 우리 정부 스스로 소홀했던 것인 만큼 직접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 정부와 협의해 국내 입법과 정책으로 구제할 필요가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과 새 정부는 동아시아질서 재편 상황에서 일본과의 새로운 관계설정 및 개선이 중요해진 만큼 한·일관계의 고질적 병폐였던 이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동안 미봉책으로 차치해두었던 대일관계의 고질(痼疾)을 바로잡으려는 모습이야말로 역사를 직시하고 국민을 통합하려는 새로운 리더십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오일환 강제동원위원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