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라카지’가 도대체 뭐야?
입력 2012-10-31 19:23
엊그제 신문을 보노라니 ‘라카지’가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올라 최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대체 ‘라카지’가 뭐지?
뮤지컬을 직접 관람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 한글 제목만으로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이가 있을까? 그러다보니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상영됐던 프랑스 영화 한편이 생각났다. ‘루지탕’. 당시 이건 또 무슨 입술 연지탕인고 싶었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루지탕’은 유럽에서 천대받는 집시의 설움을 다룬 내용이었다. ‘집시’의 프랑스어 남성형 ‘지탕(gitan)’에 관사 le를 붙여 직설적으로 제목을 단 것인데 한국에서 원어발음을 일본식으로 표기하다보니 ‘루지탕’이 된 것이었다.
‘라카지’도 ‘라’가 프랑스어의 여성형 관사 la가 아닐까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뮤지컬의 원제가 프랑스어 ‘La Cage aux Folles’였다. 극중 나이트클럽 이름으로 직역하자면 ‘미친 여자들의 우리 또는 새장’이지만 folles는 여성 역을 하는 남자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은어이기도 하다. 여기서 알 수 있듯 동성애 커플에 관한 뮤지컬인데 앞부분의 원어만 따와 한글발음대로 표기했으니 뮤지컬 제목이 무슨 암호처럼 된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언제부턴가 국내에서 상영되는 외국영화들의 제목이 가관이다. 외국어 그대로 우리발음화해서 표기하는 것들 투성이다. ‘글래디에이터’ ‘미션 임파서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등등. ‘검투사’ ‘불가능한 임무’ 또는 ‘불가능 작전’ ‘백설공주와 사냥꾼’처럼 우리말로 번역해 쓰면 큰일이라도 나는가?
이는 약과다. 역시 원제를 그대로 쓴 ‘M. 버터플라이’의 경우. ‘나비 선생’ 또는 ‘미스터 나비’라고 해야 옳다. 원제는 오페라 ‘마담 버터플라이(나비 부인)’의 주인공을 남자로 바꾼 것. 여기서 M.은 프랑스어의 무슈, 곧 미스터다. 이를 그냥 ‘엠 버터플라이’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알 재주가 없다.
물론 옮기기 쉽지 않은 원제들도 많다. 그렇다고 원어를 소리나는대로 적는다는 건 일종의 ‘문화 전달자’로서 영화수입업자들의 나태함과 무책임의 표본이다. 직역이 곤란하다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원 뜻과 가까운 말로 얼마든지 의역할 수 있지 않은가.
‘미션 임파서블’의 경우 과거 오리지널 TV시리즈가 국내 방영됐을 때 방송사가 붙인 제목은 ‘제5전선’이었다. 스파이(제5열)들의 비밀공작을 의미하는 제목으로 얼마나 멋들어진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을 멋진 번역 제목들을 보고 싶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