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가동중단, 정전, 강으로 변한 맨해튼 거리… 허리케인 샌디 美 동부 강타
입력 2012-10-30 21:56
뉴욕 맨해튼 마천루에 불이 꺼졌다. 건물 꼭대기엔 부러진 크레인이 불안하게 매달려 있었다. 유조선은 땅 위로 밀려왔다. 월스트리트에선 자동차가 방파제를 넘어온 파도에 떠다녔다. 비를 동반한 시속 129㎞의 거센 바람만이 캄캄한 거리를 포효하며 질주했다.
‘프랑켄스톰’ 샌디가 29일 오후 8시(현지시간) 미국 동부에 상륙했다. 비록 샌디의 위력은 허리케인급에서 ‘열대성 태풍’으로 약간 낮아졌지만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카리브해를 건너왔다. 뉴저지 뉴욕 등 동부 6개 주의 바닷가 마을에는 긴급대피령이 떨어졌다.
17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0일 뉴욕주와 뉴저지주를 ‘중대 재난’ 지역으로 선포했다. 공화당 밋 롬니 후보도 유세를 중단했다. NBC뉴스는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대선 투표일(다음달 6일)도 연기가 가능하다”고 전했다.
샌디의 몸집은 더 커졌다. 영향권이 반경 780㎞에 이르러 북쪽으로는 국경 넘어 캐나다까지, 서쪽으로는 오대호까지 비바람을 뿌렸다. 웨스트버지니아에는 눈보라가 몰아쳐 18㎝가 쌓였다.
뉴욕주 최북단 몬타우크 포인트의 높이 300m 등대가 심하게 흔들려 관리인들이 긴급 대피했다. 벽 두께가 1.8m인 이 등대의 관리인 마지 유스키는 “26년간 근무해 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인 밀집 지역이 있는 뉴욕주 퀸즈에서는 밤늦게 정전과 화재가 발생해 50여채가 불탔다. 198명의 소방대원이 총출동한 대규모 화재였다. 맨해튼 아래 스테이튼섬에는 500m 길이의 초대형 유조선이 바람에 밀려 부두 위로 올라왔다. 노스캐롤라이나 아우터뱅크스 앞바다에선 유람선 HMS바운티호가 침몰해 선원 14명이 해안경비대에 구조됐다. 선원 1명은 숨진 채 발견됐고, 선장은 실종됐다. 1962년 제작된 이 배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해적선 흑진주호로 등장하기도 했다.
맨해튼에서는 이날 예정됐던 자유의 여신상 재개장 행사가 연기됐다. 여신상을 지키던 관리인들도 뉴저지로 피했다. 인적이 끊긴 타임스스퀘어에는 광고판만 깜박였다. 카네기홀 건너편 57번가의 80층 아파트 꼭대기 공사 현장에선 공사용 크레인이 힘없이 부러져 바람에 나부꼈다. 뉴욕주립대 병원은 비상용 전력마저 바닥나 수백명의 환자들이 구급차에 실려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샌디가 통과하는 지점에 있는 10곳의 원전 시설에 경계경보를 발령했다. 뉴저지와 뉴욕의 2개 원전은 29일 밤 가동이 중단됐다. 미국에서 제일 오래된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의 원자력 발전소 ‘오이스터 크리크’를 운영하는 엑슬론사는 “안전설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동부지역 주민 6000만명은 불안한 밤을 보냈다. 650만명은 정전으로 어두운 집 안에서 양초를 켜고 지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여성 1명이 강풍에 날아든 표지판에 쓰러져 숨졌다.
이 지역의 학교 회사 정부기관은 29일에 이어 30일에도 문을 닫았다. 뉴욕증시도 이틀째 온라인 거래만 열어뒀다. 이틀 연속 휴장은 1888년 이후 처음이다.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델라웨어의 공항에선 1만3000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됐다. 보스턴에서 워싱턴DC까지 모든 지하철과 철도가 폐쇄됐다. 대중교통 운행 중단은 최소 31일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AFP통신은 전했다. CNN은 재산 피해가 최대 200억 달러(약 2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도 0.25% 포인트 떨어질 것이라고 웰스파고 은행은 내다봤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