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경기 전망에 환율 추락 악재 겹쳐 외국인 ‘셀 코리아’ 잰걸음
입력 2012-10-30 18:53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자본시장(주식·채권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지난 8∼9월 막대한 규모로 몰려들던 외국인 자금이 최근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탄탄한 안전자산이라며 선호하던 채권시장에서도 투자 규모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우리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비관적 전망과 함께 금리가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까지 추락하면서 더 이상 환차익을 볼 수 없게 되자 ‘셀 코리아(Sell Korea)’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8월부터 지난달까지 순매수를 지속하던 주식시장의 외국인 자금은 이달 들어 순매도세로 돌아섰다. 외국인 투자자는 8월과 지난달에 각각 6조9330억원, 3조2110억원의 매수우위를 나타냈지만 이달 들어 26일까지 1조2653억원을 순매도했다. 황성윤 금감원 금융투자감독국 증권시장팀장은 “국제통화기금(IMF)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잇따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국내 채권시장으로 흘러간 것도 아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채권시장의 외국인 순투자 금액(순매수 금액에서 만기도래 상환액을 차감한 것)은 지난달 1조4880억원이었지만 이달(1∼26일)에는 1150억원에 그쳤다. 채권시장 투자세가 10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황 팀장은 “주식시장에 닥친 악재가 채권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됐고,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채권시장 투자세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이 달러당 1000원대로 떨어진 것도 외국인 자금 이탈의 이유로 본다. 자국 통화로 차익을 실현해야 할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원화 가치가 높아질수록 기대할 만한 환차익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다음 달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불확실성을 우려한 해외 금융회사가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본격적인 유출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달의 외국인 자금 유출을 일시적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앙은행의 부채가 많은 선진국은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며 “양적완화 정책이 계속되는 한 외국인 투자자는 큰 틀에서 우리 주식·채권을 사는 쪽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분석부장은 “미국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관망세가 불거졌을 뿐 대외 여건은 나빠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