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의 시리아, 자유와 평화를 꿈꾸다] 국민일보 기자 만나기 전날 국경을 넘은 시리아 청년 혁명가

입력 2012-10-30 21:42


(3) 독재정권 속에서 꽃피는 민주화 운동

“비밀경찰이 찾아와 협박했어요. 정권이 저를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혁명을 그만두면 보상이 있을 거라는 회유도 했지요. 그래서 비밀경찰에게 말했습니다. ‘가서 아사드(장기집권 중인 시리아 대통령)에게 전해줘. 혁명은 절대 멈추지 않아. 아사드가 TV에 출연해서 잘못을 인정하는 것만이 혁명을 멈추게 할 거야.’”

그는 참 담담했다. 터키 이스탄불에 본부를 둔 시리아국가위원회(SNC)에서 지난 4일 만난 무함마드 사틀라(48)씨는 시리아 내에서 받았던 정권의 협박 과정을 얘기하면서도 흥분하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12년 전부터 민주화 단체 ‘평화적인 변화를 위한 다마스쿠스와 주변부의 자유 모임’에 소속돼 활동하던 그는 이미 한 차례 투옥돼 1년간 수감된 경험이 있다. 사틀라씨는 지금도 정치 수배자다.

정치 수배자와 비밀경찰

시리아의 사실상 임시정부인 SNC 본부에서 활동하는 지도자들은 대부분 정치 수배자다. 시리아의 명문대학인 다마스쿠스대 샤리아(이슬람법)대 학장인 이마딘 알 라시드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수배자가 됐다. 그는 “시리아 사태가 종료돼도 교수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라시드 교수는 군대의 과잉진압과 이로 인해 희생당한 시민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해외 언론에 알렸다. 정권의 비밀경찰이 찍은 영상을 구입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에게 3200달러를 주고 산 바니아스 지역의 유혈사태 영상은 해외 언론에 보도돼 시리아 사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라시드 교수와 활동한 민주운동모임에는 10대가 많았다. 그는 “비밀경찰들의 의심을 사지 않는 여학생들이 특히 민주화에 앞장섰다”며 “소녀들 중 일부는 수감돼 있다”고 말했다.

‘무카바라트’(비밀경찰)는 시리아 도처에 깔려 시민들을 감시하고 탄압한다. 한인 유학생으로 시리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 지난해 9월 빠져나온 부산외대 권미리내(05학번·여)씨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정권에 대한 의견은 나누지 못한다”면서 “평범한 이웃 아저씨였는데 알고 보니 비밀경찰이라는 소문을 뒤늦게 전해들은 적도 꽤 있다”고 회고했다.

‘반테러법’도 반정부 활동을 억제한다. 국가 안보가 명분인 이 법은 ‘사람들에게 공황상태를 일으키는 모든 행동’ ‘공공 보안을 와해하거나 국가의 기본 시설에 해를 주는 행동’을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문학작품을 배포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도 테러에 포함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반테러법’을 광범위하게 적용해 평화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활동가들을 구금하는 행위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지난 25일 지적했다.

정치 수용자에 대한 학대와 고문은 끔찍하다. 시리아 내 고문센터는 27곳으로 몸에 스테이플 박기, 성기 고문 등의 인권 유린이 벌어지고 있다.

국영 언론사 사나(SANA)를 제외한 독립적인 언론 활동도 불가능하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지난해 3월 이후 구금된 기자는 150명, 살해된 기자는 55명”이라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존엄성 시위

시리아 인권감시단체 ‘위반기록센터’(VDC)에 따르면 시위 참여 등으로 구금된 시민은 지난해 3월 이후 최소 3만2160명이다. 그러나 시리아 전역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 달라는 의미를 담은 ‘존엄성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아 빈 병에 낙서하기, 광장을 붉은색으로 칠하기, 팸플릿 만들기, 자유의 날 만들기. 이런 활동이 나중에는 존엄성 시위로 발전했어요. 20여개 도시가 동시에 시위를 벌였고 나중에는 해외에서도 교민들이 존엄성 시위에 참여했어요.” 시위를 조직한 하맘 유슈프(32)씨가 설명했다.

시민혁명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시리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250명의 반정부 인사들이 참여해 2005년 발표한 ‘다마스쿠스 선언’이 대표적인 예다. 권위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아사드 정권을 규탄하고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요구한 이 선언의 동참자들은 다수 투옥됐다. 선언에 참여한 여성 알리야 만수르(32)씨도 7년 전부터 수배 상태다.

시리아 시민혁명은 과거 한국의 민주화 과정과 묘하게 닮아 있다. 지난 5일 조지 사브라 SNC 대변인을 만나 이런 말을 했더니 그가 웃으며 짧게 답했다.

“인간이 사는 사회가 어디든 비슷하지요.”

압제에 대항해 민주사회로 가는 과정은 세계 어디든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는 의미였다.

본보 기자 만나기 전날 국경 넘은 혁명가

정치 수배자 잠쉬드(30)가 국경을 넘어 시리아에서 터키에 도착한 날은 지난 9일이었다. 본보 기자는 도착 당일 그와 통화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이스탄불 탁심의 약속 장소에 나타난 잠쉬드는 고불거리는 갈색 머리에 청바지, 하늘색 셔츠 차림이었다.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자유로운 이스탄불의 평범한 청년 같았다.

잠쉬드는 8개월 전 시리아를 빠져나와 터키에서 시리아국가위원회(SNC) 멤버로 활동해 왔다. 터키와 시리아 혁명가들 사이에 소식이 잘 전달되지 않자 그는 지난 5일 국경을 넘었다. 탕탕! 터키군이 국경을 향해 달려가는 그에게 총탄을 쏘았지만 잠쉬드는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필사적으로 철조망을 기어 올라갔다. 날카로운 철조망이 그의 팔을 찔러댔지만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잠쉬드는 시리아 국경에 들어섰다. 팔뚝에는 뚝뚝 피가 떨어졌다.

잠쉬드는 정부군에 발각되지 않기 위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한 곳에 3시간 이상 머물지 않았다. 국경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던 친구들은 잠쉬드의 옷을 갈아입히고 변장을 시켰다. 그날 밤 이들은 시리아 내의 평화적인 시위 방법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그는 국경 철조망에 긁힌 오른쪽 팔뚝을 보여주며 웃었다. “혁명의 상처입니다.” 어제 전쟁터를 탈출한 인간의 미소라고 보기엔 가볍고 환한 것이다.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인가요?

“먼저 정치적인 자유를 희망합니다. 시리아에는 42년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대를 이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정치라는 게 없었어요. 그리고 개인의 자유, 종교와 신념과 사고의 자유, 누구든지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자유, 투표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해요.”

그에게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을 물었다. “혁명을 하다 죽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자유에 대한 갈망은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국경을 넘다 죽더라도 죽음 자체가 영광이나 명예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원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잠쉬드는 현재 시리아 다마스쿠스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러나 언제 학위를 마칠지는 알 수 없다. 전쟁은 개인의 학업과 모든 일정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시리아 사태가 끝나면 민주주의와 혁명에 관한 박사 논문을 완성하고 싶어요.”

이스탄불=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