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인종 간극’ 드러낸 美 대선

입력 2012-10-30 19:16


미국 대통령 선거를 취재하면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 지지자들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를 자주 묻는다.

롬니 유세 집회에서 만나는 지지자들은 거의 100% 백인이다. 경제 회복 지연이나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안) 등 정책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응답은 예상외로 적다.

가장 빈번히 나오는 응답은 ‘정직하지 않다’ ‘도덕성(moral character)에 큰 결함이 있다’ ‘신뢰할 수 없다’ 등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되물었을 때 일부는 “‘정직한’ 롬니 후보를 부당하게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 정도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상당수는 왜 오바마가 도덕적이지 않은지, 신뢰할 수 없는지에 대해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 지난주 최대 승부처인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공화당 지역사무소에서 만난 중년 여성도 그런 부류에 속했다.

이 여성은 오바마 대통령이 사악한 인물이라고 힐난했다. 심지어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 4년 전에 국민을 속여 대통령이 됐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등이 가세해 논란이 됐으나 이미 거짓으로 판명난 오바마의 케냐 출생설을 가리키는 듯했다.

이달 초 친공화당 성향의 폭스뉴스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안보관계 회의에 빠지면서도 심야 토크쇼에 출연했다며 ‘게으름뱅이 대장(slacker in chief)’으로 불렀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이자 정치논평가인 앤 콜트는 22일 3차 대선 토론회가 끝난 뒤 트위터에 “저능아(retard)에게 친절하고 신사적으로 대한 롬니 후보를 지지한다”고 올렸다. 오바마를 지적장애인에 비유한 것이다.

백인들의 예상을 넘는 격렬한 반(反)오바마 감정에 대해 가졌던 의아함이 요즘 조금씩 풀리고 있다. 지난 24일 워싱턴포스트·ABC방송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인 남성 가운데 롬니와 오바마 지지율은 65%대 32%로 배나 차이가 났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백인 남성들의 후보 지지율이 이처럼 벌어진 것은 처음이다.

선거분석가들은 부동층으로 분류됐던 백인 남성들이 대거 지난 3일 1차 대선 토론에서 롬니의 선전을 보고 롬니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보고 있다. 백인 표가 롬니로 몰리고 있는 것이 막판 혼전의 주된 이유라는 데 대해 대다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동의한다.

물론 백인 부동층의 표심 이동을 모두 인종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중도 쪽으로 접근한 롬니의 ‘변신’과 믿을 만하다는 안정감을 준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롬니를 지지하는 백인들이 기자에게 오바마를 싫어하는 이유라고 든 이유를 하나하나 보자. 정직하지 않고, 게으르며, 남을 속이고, 머리가 나쁘고….

간단히 말하면 흑인에 대해 미국인들이 가진 편견의 종합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에 대해 가진 인종적 편견을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게 투영하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번처럼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선거는 인간이 가진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두 후보의 정책과 비전을 비교하는 합리성만으로 승자가 결정되리라는 것은 이상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 인종적 균열은 대선 이후 미국 정치와 사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