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동원] 저성장·저수익·저속의 시대

입력 2012-10-30 18:30


한국 경제가 3분기 1.6% 성장률을 기록해 현재 추세대로 간다면 금년 경제성장률은 2% 내외에 달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금년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아지면 내년 경제성장률도 한국은행이 전망한 3.2%보다 낮아져 2%대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이 답답한 전망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국 경제의 다음 두 가지 불편한 실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3분기에 미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에 근접하는 2% 성장률을 보인 반면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의 절반에도 미달하는 수준의 1.6% 성장률을 보였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3년간 평균 3% 내외에 그칠 경우 이러한 장기 저성장국면은 경제개발 60여년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완전히 꺼졌다고 할 것이다.

내년에도 ‘몇 달만’ 참으면 된다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귀에 솔깃한 전망을 믿고 싶은 독자가 계시다면 이제라도 꿈을 깨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추위로 이야기하자면 한 철 견디면 지나가는 한파(寒波)가 아니라 몇 철을 겪어야 할지 기약이 없는 빙하기가 시작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럼 왜 감히 경제의 빙하기가 왔다고 하는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성장 엔진을 상실했으며 이에 따라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53%(2012년)에 달하는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도 멈춰 선 것이다. 더 이상 수출 주도를 통한 불황 극복의 시나리오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선진국 경제의 성장엔진이 망가졌다고 할 만한 대표적인 증거로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되레 높아졌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로 보면 GDP 대비 정부채무 비율이 2007년 74.5%에서 2011년 103%로 높아지도록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실업률은 2007년 5.8%에서 오히려 2011년 8.2%로 높아졌을 뿐이다. 더구나 방만한 재정지출의 결과로 지난해 9월부터 유럽 사태를 겪고 있으며, 미국은 ‘재정절벽’의 불안으로 흔들리고 있다.

한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BRICs) 등을 비롯한 개도국들은 내부 성장통을 앓고 있어 세계경제 회복에 기여할 여력이 없어 보인다. 최근 발표된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의 핵심은 주요국들이 정치적 지도력을 회복해 유럽 사태를 비롯한 당면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세계경제 회복의 틀과 수단을 확보하기까지 향후 수년간 세계경제는 활력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 또한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며, 한국 경제는 성장동력이 꺼진 ‘무동력 경제시대’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개발시대 이래 60년간 줄곧 가속페달만 밟아왔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가속페달 대신에 ‘브레이크’를 주로 쓰는 시대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고성장·고수익·고속의 시대는 가고 저성장·저수익·저속이 한국 경제의 ‘뉴 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초 연 4%에서 최근 3% 초반으로 떨어졌다. 얼마나 많이 빨리 가기의 시대가 아니라 천천히 가면서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브레이크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브레이크의 시대를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가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의 경로를 답습할 수도 있지만 세계경제의 구조재편기를 활용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수출을 성장엔진으로 쓸 수 없는 한국경제가 ‘구조개편’을 통해 어떠한 새로운 성장의 틀을 마련할 것인가? 구조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어떤 합의를 이룰 수 있는가? 기로에 선 한국 경제는 ‘브레이크 시대의 극복’이라는 시대 과제에 직면해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