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조성기] NLL과 대통령의 정치 역량

입력 2012-10-30 19:15


대한민국은 동해에서는 독도 문제로, 서해에서는 북방한계선(NLL) 문제로 일종의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요즈음 대선을 앞두고 NLL과 관련해 새삼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마치 NLL이 사상 검증의 최종 라인 혹은 시금석이라도 되는 듯이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다.

NLL은 한국전쟁 휴전 당시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군사분계선(MDL)과는 달리, 마크 웨인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1953년 8월 30일 내부 작전규칙으로 정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남한 군대나 유엔군이 그 선을 넘어 군사 작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고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클라크는 내부 작전규칙으로 정한 것이므로 그 내용을 남한 정부와 해군에게만 전달하고 북한 측에는 정식으로 통보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의로 일방적으로 정했다는 소리를 지금도 듣고 있다.

실효적 지배 흠집내려는 북한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북한에게도 유리한 NLL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72년까지는 북한도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서해상 충돌 사건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73년 이후에 북한이 남한의 NLL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자기들이 나름대로 국제법상 영해 조항을 적용해 설정한 해상경계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96년 7월 16일 NLL에 관한 이양호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이 문제가 되자 보수 성향이 짙은 조선일보마저 그 다음 날 신문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바다의 경우는 남북 간 의견이 엇갈려 지금까지 정해진 경계선이 없다. 바다에 말뚝을 박아 표시할 수도 없어 각기 양측에서 관행적으로 인정해온 수역을 경계로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서로 간의 수역을 침범했을 경우 정전협정 위반사항이나 국제법상으로 제소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무력충돌을 우려해 양측이 힘의 균형을 통해 자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 점에서 이 국방장관이 NLL 침범이 정전협정 위반사항은 아니라고 한 답변은 맞는 것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 90년 9월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이 시작되어 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이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해 공동 합의했다.

남북기본합의서 제2장 부속합의서 제10조에서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고 하여 해상경계선이 아직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았음을 서로 인정했다.

그런 점에서는 노태우 정권 시절의 남북기본합의서가 남북 간의 절실한 실제적 현안문제를 다룬 셈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이후 남한은 이 문제를 다루는 듯하다가도 흐지부지 외면하고 있고, 북한은 자꾸만 시비를 걸어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보려 하고 있다.

차기 정부서 슬기롭게 풀어야

국제법상 어느 지역을 일정 기간(대개 50년 이상) ‘실효적 지배’를 해왔으면 영토로 인정한다는 관습법이 있다. 남한의 ‘실효적 지배’에 흠집을 내기 위한 북한의 시도가 서해상 무력충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차기 대통령과 정부에 주어진 셈이다. 남북기본합의서의 약속대로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을 통해 계속 협의해나가느냐, 무력충돌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대치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느냐.

예수는 그 분쟁의 시기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 5:9)라고 하셨다. 차기 대통령의 화평케 하는 지도자로서의 정치적 역량을 기대해본다.

조성기(소설가·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