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아듀, 애니팡!

입력 2012-10-30 18:29

“딴 따∼따라라라 딴 딴∼♬” 피아노 선율이 경쾌하다. 원숭이, 돼지, 토끼, 고양이, 강아지, 병아리, 쥐 등 일곱 마리 캐릭터도 귀엽다. 이들을 같은 동물끼리 세 마리 이상을 한 줄로 세우면 “팡∼” 효과음이 작열한다. 그리고 득점! 작은 손놀림에 동물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고, 불꽃이 그라운드를 휘저으면 새로운 판의 질서가 펼쳐진다. 애니팡과의 인연은 이렇게 흥미롭게 시작됐다.

중년들이 신났다. 테트리스를 끝으로 게임계에서 졸업한 이들은 그동안 리니지처럼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인터넷 게임에서는 소외됐으나 모바일 세상이 도래하면서 물을 만났다. 애니팡 이용자가 순식간에 2000만명에 도달한 데는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게임 리스트에 지인들의 이름이 가득하니, 이들과 시공을 함께한다는 소셜 미디어 효과도 실감했다.

비용도 거저나 다름없다. 애니팡의 연료격인 100원짜리 하트(♥)를 사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지만 주로 지인들이 보내주는 것을 이용한다. 평소에 연락이 없던 친구들도 애니팡에 동참했다는 원격신호를 받고는 하트를 매일 날렸고, 비상연락망으로 전화번호를 따놓은 딸 친구까지 선물을 보내줬다. 아끼고 아껴 50여개를 메시지함에 쟁여 놓으니 쌀가마니 가득한 광을 보는 듯 뿌듯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니 달라졌다. 손가락 관절을 풀고 유연하게 움직였는데도 점수는 바닥이었다. 하트 수십 개를 한꺼번에 쓰며 고지전을 펼치기도 했다. 다음 날 눈앞에 동물원이 그려졌다. 호승심? 중독? 그러던 어느 날, 주간순위를 보고 깜짝 놀랐다. 100만점 기록이 등장한 것이다. 주변에 물어보니 컴퓨터에 특정 프로그램을 깔아 돌린다고 했다.

게임은 공정하지 않았다. 갑자기 좌절감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목이 뻐근했다. ‘애니팡 점수 올리는 법’에 따라 양손으로 휴대폰을 잡은 채 눈을 사팔뜨기처럼 뜨고 동물들을 일렬로 세우던 모습이 한심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을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며 동물들과 다투던 그날 밤의 열정이 허무했다.

끊으리라 결심하니 딩동 소리를 내며 반갑게 찾아들던 하트가 예뻐 보이지 않았다. 도토리라면 모를까, 애초에 하트라는 설정이 잘못됐다. 그래서 시월의 마지막 날에 너를 보내기로 한다. 카톡에는 아직도 남은 하트가 많지만 더이상 설레지 않는다. 애니팡 때문에 가슴 속 뜨거운 진짜 하트를 잃어버린 한 달이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