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10월의 마지막날에

입력 2012-10-30 18:28


10월의 마지막 날, 이제 두 달 남은 달력을 보노라니 갑자기 학생시절 미술 시간이 생각났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이런저런 재료를 사용하여 공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미술에 꽤 소질이 있었던 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잘 그리고, 만드는 편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나의 작품을 학생들에게 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복도에 걸어놓기도 했습니다.

똑같은 미술 시간에 이렇게 누군가는 작품을 완성하여 즐겁게 집으로 가져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친구는 밑그림만 겨우 그리고 어떤 친구는 떠들고 장난만 하다가 가기도 합니다. 준비물을 가지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성취감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준비물들을 망쳐놓고 쓸모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도 돈도 아까운 일입니다. 누군가는 재능이 있어서 좋은 작품을 만들지만 어떤 친구는 재능은 없어도 성실한 자세로 끝까지 완성을 합니다. 다양한 모습의 미술 시간이었습니다. 난 그 미술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끝나고 열심히 한 작품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는 기쁨도 꽤 즐거웠습니다.

인생에도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각자의 작품을 만듭니다. 나만의 독창성을 살리고 자신의 색깔을 입힙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다 흘러 끝이 가까워옵니다. 이 세상에 살게 하신 시간에 나만의 그럴듯한 작품 하나 만들어 인생의 황혼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그 작품 손에 들고 즐겁게 본향 집으로 떠나야 할 텐데요. 나의 작품을 보시고 평가하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 가슴 설레야 할 것입니다.

올해도 두 달 남았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납니다. 미술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서둘러 작품을 마무리하기 위해 손놀림이 빨라지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매년 해를 열면서 올해 ‘꼭’ 하고 싶은 일들, 해야 할 일에 대한 각오가 다부집니다. 그러나 해가 끝나갈 무렵이면 왠지 처진 어깨에 얹힌 짐만 무겁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만 갔는지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천성적인 게으름도 아닌데 미루기 십상이고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자신이 처연합니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눈들에게 미안하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뻔뻔스러워져가는 내 자신이 밉기도 합니다.

이제 두 달 후면 2012년이라는 미술시간이 끝납니다. 50분 수업시간으로 따지면 이제 한 5분 남았나요. 그래도 서두느라 나의 색깔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이 정도면 지난해보다 낫다는 오기도 솟고요. 이렇게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가 흘러 마침내 그 집에 들어갈 때는 손에 든 작품에 미소 짓기를 기대합니다.

<산정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