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권혁세, 연이은 정책 밀어붙이기 논란… 김석동 금융위원장 반대에도 거침없는 행보

입력 2012-10-29 21:13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정책 밀어붙이기가 거침없다. 상위기관인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의 반대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자칫 금융기관 간 갈등이 커지면서 혼선이 발생해 국민들만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권 원장이 추진해온 은행권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과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신탁 후 임대) 활성화 등 정책이 김 위원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실화되고 있다. 일선에선 상위기관인 금융위보다 은행 등 금융사에 대한 감독권을 직접 휘두르는 금감원의 말발이 더 먹힌다는 얘기도 나온다.

권 원장은 29일 강원도 춘천 강원대에서 열린 ‘캠퍼스 금융토크’에서 “일부 은행이 자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이 충실히 이행돼야 한다”며 “은행권 공동으로 세일 앤드 리스백(매각 후 임대)을 추진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은 은행권 자율보다 권 원장 주문으로 시행되고 있는 하우스푸어 구제책이다. 권 원장은 지난달 13일 인천 남동산업단지를 방문해 “은행권이 공동 추진해야 한다”며 처음 실시 방침을 밝혔다. 이에 김 위원장이 “은행 공동 방안이 필요한 단계가 아니다”며 정면으로 반대 의견을 밝혔지만 권 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등에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몰아붙였다.

지난 7월 발표된 은행권 프리워크아웃 활성화 대책도 비슷한 상황이다. 당초 권 원장이 취약계층에 대한 금융지원 방안으로 은행권 프리워크아웃 확대를 추진하자 김 위원장은 “당국이 강요할 일이 아니다”며 제동을 걸었었다. 하지만 권 원장은 입장을 굽히기는커녕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은행권 프리워크아웃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맞불을 놨다. 이후 은행권에서는 프리워크아웃이 봇물을 이뤘다.

은행권 세일 앤드 리스백도 권 원장 방침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상품을 출시한 우리금융은 권 원장이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힌 이후 지원 대상을 2배 수준으로 늘렸다.

이 같은 상황은 행정고시 23회 동기로 같은 시기에 양대 금융당국 수장을 맡은 두 사람 간 미묘한 힘겨루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관측이다. 금융위가 금감원과 서울 여의도 같은 건물에 입주하다 이달 초 세종로로 옮긴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갈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금감원이 권한을 강화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는 가운데 금융위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감원의 소비자보호처를 소비자보호원으로 격상시켜 사실상 별도 조직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비자보호원장은 금감원장 지시를 받지 않는다. 금융위로서는 위상을 높이면서 금감원장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권 원장이 최근 “지금 상황에서 조직을 크게 흔들면 위기관리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한 것은 금융위와 김 위원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