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患율’의 덫

입력 2012-10-29 21:27


우리 경제가 ‘환율의 덫’에 빠졌다.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 폭이 주요국 통화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한계 때문에 ‘외풍’에 휘둘리면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 주요 수출대상인 중국·미국·유럽의 경제위기까지 맞물려 실물경제가 수직 낙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환율 급락 등 최근 경제상황을 점검했다. 매주 목요일에 열던 회의를 사흘 앞당겼다. 그만큼 급박해서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주저하지 말고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즉각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1.2원 내린 1095.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5일 1100원선이 깨진 뒤 사흘 연속 내림세다. 유럽·미국·일본 등 선진국이 푼 유동성이 원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환율 하락 속도가 가파르면서 폭발력은 커지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팽창적 통화정책을 시사하면서 지난 7월 2일 1146.10원이던 환율은 이날까지 4.4%나 급락했다. 세계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추락 속도는 미국의 3차 양적완화 이후 더욱 빨라졌다. 원화 환율은 1128.40원(9월 13일)에서 2.9%나 빠졌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 링깃(-1.1%), 중국 위안(-0.1%), 태국 바트(-1.0%)와 비교하면 가파르다.

우리나라는 경제 기초체력이 탄탄한데다 기준금리가 선진국보다 높아 글로벌 자금의 주요 목표물이다. 고전하는 선진국들이 팽창적 통화정책으로 자국 통화가치 하락, 경기부양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우리 경제가 상당기간 환율 하락, 수출 부진을 동시에 맞을 수밖에 없다.

우리 수출 증가율은 지난 3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올 1∼9월 기준 23.9%), 미국(10.9%), EU(9.4%)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어 나아질 기미도 없다. 미국은 예상보다 큰 ‘재정절벽’ 충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재정절벽이 해결되지 않으면 GDP가 내년에 0.5% 위축된다고 봤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은 미 의회예산국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며,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찬희 신창호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