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 오늘의 저를 있게 한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입력 2012-10-29 18:13


고 임연심 선교사 양아들 존슨 투케이 에키로(케냐 마쿠에니국립병원 의사)씨의 사모곡

“맘(엄마),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건 당신 때문입니다. 저는 맘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에서 9900㎞ 떨어진 케냐에서 온 검은 피부의 아들은 고 임연심 선교사를 ‘맘’이라 부르며 그의 부재 앞에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 임 선교사는 케냐 최북단 투르카나에서 아동보호·가난퇴치 사역을 펼치다 지난 8월 28년 선교사역을 뒤로 한 채 박테리아 감염과 고열로 갑자기 소천했다.

케냐 마쿠에니국립병원 의사인 존슨 투케이 에키로(29)씨가 임 선교사를 만난 건 1989년이다. 구호단체가 고아원 관리를 포기하면서 그를 포함한 72명의 어린이들은 졸지에 거지신세가 됐다. 7개월간 쓰레기통을 뒤지고 강가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먹었다.

“6살 때 일입니다. 피부색이 전혀 다른 30대 여성이 저희를 보자마자 와락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분은 거지와 같던 우리에게 음식은 물론 운동화와 옷, 가방을 줬어요. 그때 처음 러닝셔츠를 입고 신발을 신었던 것 같아요.”

흙담집에 살던 72명의 고아들은 임 선교사를 만나면서 180도 환경이 바뀌었다. 양철 지붕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포크와 스푼을 쓰게 됐다. 초등학교에도 진학했다.

“처음엔 이분이 ‘자기 나라에서 직장이 없어 이런 곳에 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평생 독신으로 사신 당신은 자신을 아프리카 선교사라고 소개했지만 우리는 맘이라고 불렀죠. 맘은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 천사 같은 분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까지 불러서 밥을 먹이셨는데 당신은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셨어요. 피부색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우릴 그토록 사랑하고 품을 수 있을까, 참 의아했습니다.”

그런 임 선교사는 잘못된 행동 앞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고 한다. 에키로씨는 “맘은 성경읽기와 기도를 무척 강조하셨다”면서 “잘못을 인정하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는 분이었다. 맘 때문에 고등학교 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학교에서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임 선교사의 권유로 케냐에 2개밖에 없는 의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진학했다. 문맹률이 95%에 이르고 1년에 평균 1명이 대학에 진학하는 투르카나주의 현실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임 선교사는 에키로씨를 포함해 20명의 대학 등록금 수만 달러를 아무 말 없이 지원했다. 그와 함께했던 고아 중에서 목회자와 기자, 은행원, 공무원, 정치인도 나왔다. “사역은 돈으로, 전략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같이 강한 사랑으로 하는 것”이라 했던 한 여인의 헌신적 삶이 72명의 ‘임연심’으로 확대된 것이다.

“맘은 피곤한 기색을 절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고혈압이 있었고 올해 뇌종양이 발견됐지만 늘 괜찮다고 하셨어요. 저는 매일 환자를 돌보고 지친 몸으로 방에 들어오면 벽에 붙어 있는 맘 사진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해요. ‘엄마, 엄마도 제가 자랑스러우시죠. 오늘도 제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눈물을 글썽거리던 그는 감사의 말을 남겼다. “하나님, 제게 이런 훌륭한 어머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니를 케냐에 보내주신 대한민국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에키로씨는 30일 오후 7시30분 건국대 새천년홀에서 열리는 임 선교사 추모음악회에 참석한 뒤 다음 달 1일 출국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임 선교사의 숭고한 삶을 기념하기 위해 투르카나에 4년제 중·고등학교를 세우기로 했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