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유통업계 상생하려면

입력 2012-10-29 18:35


전통시장엔 사람들이 북적이는 생동감이 있다. 상인과 손님의 흥정이 있고, 단골이 형성돼 소통이 원활하다. 사통팔달(四通八達) 접근성도 있다. 그래서 전통시장에 들르면 한두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유통업체는 상품 구매 편의성과 실속 등을 내세우는 대량 공급체계를 갖고 있다. 아쉽게도 시장의 소통과 정겨운 분위기는 찾기 어렵다.

양쪽이 각각의 장단점을 보완해 공존·상생한다면 소비자에게 더 좋을 게 없을 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거리가 있다. 1968년 문을 연 서울 영등포구 대림시장은 44년 만인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주변 대형 유통업체들의 등쌀에 위축되면서 운명을 맞았다. 서울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 상인들은 지금 합정동 한 대형마트의 입점 철회를 요구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장점 살리며 갈등 해소해야

대형 유통업체들이 전통시장·중소상인들과 출점(出店) 조건이나 영업시간 제한 등을 둘러싸고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들이 관련 조례를 만들어 밀어붙이다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판결이 나와 다소 기세가 꺾인 상태다. 지자체들은 조례를 재정비해 올해 안으로 다시 대형 유통업체들을 압박한다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지자체들이 규제일변도의 조례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지자체마다 다른 처지와 시각이 있다. 대형 유통업체의 장점들을 주민들이 누리지 못하게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주민들은 때와 경우에 따라 자유롭고 즐겁게 물건 살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갖길 원한다.

이런 갈등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마침내 중소상인단체와 대형 유통업체들이 지난 22일 자발적으로 모여 해결책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음달 15일까지 합의체를 구성해 현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와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원칙을 정했다니 자못 기대가 된다. 다만 출발이 다소 관(官)이 주도하고 민간이 따라가는 듯해 그 한계나 회의(懷疑)가 나오는 상황이다.

경기도 고양시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둘째·넷째 일요일’로 정했던 강제 휴무일을 ‘1·15일’로 정해 12월부터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소비자, 전통시장 상인, 마트 관계자가 모여 논의하는 ‘유통업 상생발전협의회’에서 도출됐다. 전통시장 측의 ‘매월 일요일 2회 휴무’ 입장과 대형마트 측의 ‘매월 평일 2회 휴무’ 입장을 충족시켰다.

지금 국회에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영업시간, 출점 등의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우후죽순처럼 발의돼 있다. 이는 대형 유통업체들도 자본논리만으로 배짱 영업을 하기가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도 골목상권 활성화나 중소상인 보호는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이 몰락할 경우 계층 간 갈등이나 사회불안 요인, 실업률 증대 등 엄청난 사회적 파장이 불보듯하다. 이에 대한 나름의 책임이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이 문제를 외면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선제적 노력이 상생 앞당긴다

전통시장·중소상인들도 생존과 번영을 위한 자구노력에 적극 나서야 한다. 변화하는 유통환경 속에 주민 밀착성 판매 기획이나 이벤트 등으로 대형마트나 SSM과 경쟁해야 한다. 법적 보호 속에 당위적인 존재론에만 의존할 경우 쇠락은 시간문제임을 처절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영업손실이 아닌 생존이 걸린 전통시장·중소상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해야 갈등 해소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책임 있는 반성과 대책을 먼저 내놓는 선제적 노력들이 있어야 상생의 협력을 보다 빨리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백 사회2부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