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문흥호] 동아시아 영토분규와 민족주의

입력 2012-10-29 18:38


“교류협력 이면에 드러나는 이상징후… 차세대 청년육성 통해 미래 준비해야”

세계 각국이 동아시아의 부상을 주목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이 21세기 국제 정치·경제의 주역이 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동아시아의 주축인 한·중·일 3국의 관계는 점점 갈등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체제와 이념의 벽을 넘어 교류협력이 증대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상호 간의 부정적 인식과 반감이 확산되는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강대국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상호인식의 편차와 국력의 비대칭성이 확대되고 있다. 안팎으로 몸집이 커진 중국의 눈에 한국과 일본이 점점 왜소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한·중·일의 유별난 민족주의, 애국주의 정서가 사이버 공간에 확산되면서 상호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한·중·일 사이버 공간에 난무하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사이버 민족주의의 확산 배경은 우선 중국의 경우 급격한 부상에 따른 중국인들의 과도한 자신감과 인터넷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정보통신 환경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 정부가 유명무실한 사회주의 이념의 국민 통합적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중화주의, 애국주의를 조장한 것도 한 원인이다.

일본에서는 정치권의 불안정과 지도력 부재가 심화되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언행이 사이버 공간의 민족주의 정서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즉 불안정한 일본정국 아래서 각 정당, 정파들이 정치적 입지 강화의 방편으로 일본 사회의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중국의 강대국화에 따른 일본의 불안 심리와 영토 분규에 대한 중국의 공세적 입장이 일본인들의 민족주의 정서를 부채질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동북지역의 대지진과 참혹한 쓰나미 피해로 의기소침한 일본이 그들의 자존심인 세계 제2 경제대국 지위마저 중국에 추월당하면서 우경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화주권 논쟁, 중국 내 인권·종교·탈북자 문제 등 양국 간의 민감한 현안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북한 감싸기 등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었다.

또한 일본 정부 및 주요 정치 지도자들이 앞다퉈 독도,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제기하자 이에 맞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고 일본 천황의 진일보한 사과를 촉구함으로써 한·일 간의 민족주의, 애국주의 공방이 더욱 격화되기에 이르렀다.

사이버 공간의 무책임하고 배타적인 민족주의, 애국주의 정서의 확산을 방치할 경우 한·중·일 3국 관계의 미래에 매우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일국의 민족주의, 패권주의적 행태가 상대국의 반감을 유발하고 그것이 다른 국가의 반발을 또다시 야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우선 3국의 정치권과 주요 지도자들이 자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확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 상대국의 반감을 즉각 유발할 수 있는 과거사, 영토 분규 등 민감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이용을 자제하고 정치 지도자 간의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3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자국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여 비록 단기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것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국익을 크게 손상시킬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함께 한·중·일 3국은 그동안 확대 일변도의 정책으로 일관했던 민간차원 교류협력의 문제점을 시정하고 외화내빈의 양적 팽창보다는 내실있는 민간교류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차세대 청년교류의 체계적인 확대 발전을 통해 동아시아 미래를 이끌어 갈 건실한 인재를 함께 육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아시아의 공동정신과 가치의 함양, 이에 기반한 동아시아 평화·공영의 실현은 실효성 없는 외교적 수사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흥호(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