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이인제의 周遊天下
입력 2012-10-29 18:37
동아시아인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친 이를 꼽으라면 공자(孔子)가 으뜸이다.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학자인 공자는 노(魯) 나라 사람으로 요·순·우·탕·문·무·주공이 남긴 도덕규범 등을 익혀 난세(亂世)를 구하려는 웅지를 품었다.
그는 노나라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대사구’에까지 올랐지만 경륜을 펼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14년 동안 주유천하(周遊天下)의 길에 나섰다. 산전수전을 겪으면서도 가는 곳마다 변화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고 이상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仁)이며, 정치사상은 덕치주의(德治主義)와 예악(禮樂)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여기, 공자가 간다’(갑인공방)를 집필한 진현종씨는 “공자가 주유천하를 하지 않았다면 ‘논어(論語)’의 세계와 유가철학(儒家哲學)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근현대에 들어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공자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최근 새누리당과 합당을 선언한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가 KBS라디오에 출연해 “공자님이 어머니의 나라를 떠나 10여개국을 돌아다니다 14년 만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제가 15년 만에 돌아와 국민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헌신할 수 있게 됐다”고 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당을 옮긴 그의 정치 행로는 대도정치(大道政治)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19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배하자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다. 대선 결과는 ‘DJT 연합’을 구축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승리였다. 당시 득표율을 보면 이 대표가 당을 깨지 않았다면 여당이 이길 수 있는 판세였다.
그는 대선 후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 전신)에 합류했고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노풍’에 밀리자 탈당해 자민련으로 옮겼다. 이어 국민중심당, 통합민주당, 무소속, 자유선진당 등으로 말을 갈아탔다. “다른 당과 정치적으로 통합한 것과 당명이 바뀐 것은 당적 변경과 상관없고, 그런 기준으로 보면 몇 번 되지 않는다”는 이 대표의 반박을 감안하더라도 정치 행로가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철새 정치의 종결자’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런 이 대표가 자신의 정치역정을 공자의 주유천하에 비유했으니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두 사람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