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나 성추행 한 아버지, 구속 안돼요” 기막힌 호소에…

입력 2012-10-28 20:20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부장판사 유상재)는 지난 12일 친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44)에게 관련 양형 중 가장 낮은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A씨의 죄질은 심각했다. 그는 2003년부터 2009년 사이 4번이나 친딸 B양(17)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2009년 구속된 전력도 있었다. 다시 친딸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는 실형 선고가 불가피했다. 재판부를 고민에 빠뜨린 것은 피해자인 B양의 법정 증언이었다. B양은 재판 과정에서 “아버지를 구속시키지 말아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B양이 아버지에 대한 선처를 호소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성추행과 폭언, 폭행을 일삼은 아버지였지만 A씨는 B양의 유일한 보호자다. B양은 다섯 살 때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아왔다. 아버지가 구속되면 B양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B양은 A씨가 처음 구속됐던 지난 2009년 이후 2년간 아동복지시설에서 지내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 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B양이 머물렀던 보호시설의 관계자는 28일 “B양에게 ‘집으로 가면 다시 나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말렸지만, B양은 보호시설 생활이 힘들었는지 굳이 집으로 돌아갔다”고 전했다. B양은 성추행하는 아버지와 사는 게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B양의 경우 아버지가 구속되면 법적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지정된다. 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월 평균 지원비는 14만8890원에 불과하다. 보호시설에선 숙식이 해결되지만, 보통 가정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생활은 어렵다.

재판부는 B양의 ‘기막힌 호소’에도 불구하고 A씨에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올바르게 양육할 책임이 있는 피고인이 오히려 피해자를 추행한 것은 매우 비난 가능성이 높은 범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생계를 걱정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갈구하는 피해자의 현실적 고민을 마냥 엄벌주의에 입각해 도외시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고 고민을 드러냈다. 유 부장판사는 “우리사회가 성범죄에 대한 양형 문제뿐만 아니라 피해자 지원 대책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