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착각의 힘
입력 2012-10-28 19:42
백화점에서 옷을 고르던 중 “우리 신랑은 얼굴도 하얗고 잘생겨서 뭘 입어도 잘 어울려”라는 친구 말에 깜짝 놀랐다. 친구 신랑의 피부가 하얗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얼굴에 키가 작고 통통하며, 내 친구 위해주는 착한 남자일 뿐이다. 그런데 친구는 “잘생겼다”고 우기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행복한 친구 표정에 그저 웃고 말았다..
아는 동생이 소개팅을 하고 집 앞에 잠시 차를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시간이 한참이 됐는데도 상대방 남자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아 “이 남자가 왜 안 가지? 나를 좋아하나?”라고 생각해서 계속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상대편도 동생이 가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받아주길래 “이 여자, 왜 안 가지? 나를 좋아하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때 자신을 좋아한다는 착각이 없었다면 둘의 만남은 여러 소개팅 중 하나로 기억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내 아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천재 미술가가 될지 몰라, 새 옷을 사서 입고 나가니 사람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달라, 역시 이 일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지라며 착각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착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객관적인 시선보다 착각이 삶을 이끌어가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착각으로 사랑이 시작되고, 장래도 결정된다.
지금은 최고의 모델로 인정받는 장윤주는 다리가 가는 게 콤플렉스였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 수학 선생님의 “너 모델 해도 되겠다”는 말에 인생행로를 바꾸게 됐다. 이처럼 대개 어릴 적 선생님의 칭찬으로 자신의 재능에 대한 착각이 시작된다. 이 착각은 꽤 효과가 있다. “난 재능이 있어”라고 생각하고 수십년간 그 분야에 매진하니 진짜 능력을 갖게 된다.
내 몸은 7등신이 아닌 명랑만화 주인공 비율과 같고, 멋진 저 남자가 내가 아닌 내 뒤의 그림을 보는 것이며, 상사가 “자네밖에 없어”라며 등을 두드리지만 실은 집에 일찍 가고 싶어서 내게 일을 떠맡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기왕 하루 사는 것, 그래도 다리는 긴 편이니 자신 있게 청바지 입고, 오늘도 누군가 내게 반했구나 하며 한번 웃고,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리라 생각하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오늘도 착각을 즐기며 살아보련다.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