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이영미] 닥치고 정치

입력 2012-10-28 19:42


국정감사를 지켜보며 이런 수학문제가 떠올랐다.

A: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집에서 도서관까지 거리의 1.2배라면, 집에서 학교까지는 몇 분 걸릴까?

B: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집에서 도서관까지 거리의 1.2배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10분 만에 도착할 방법은?

A는 행정, B는 정치의 질문에 가깝다. ‘학교가 도서관보다 20% 멀다’는 조건은 같다. 차이는 문제 밖을 상상하는 방식에 있다. 행정은 조건 속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다. ‘누가’와 ‘어떻게’를 묻지 않았으므로 그걸 되묻는 건 시간낭비다. 정치는 행정이 상수로 체념하는 대목에서 출발한다. 누가, 어떻게, 왜 학교에 가려 하는가.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경남 거제 70대 할머니의 자살을 놓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할머니의 생계비가 부양의무자인 딸네 부부의 수입 상승으로 중단됐다. 할머니는 관청을 오가며 “왜 지원을 못 받느냐”고 묻고 또 묻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의 불똥은 지난 7일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의 언급으로 정치권에 옮겨 붙었다. 복지부가 “딸 부부의 월 수입이 813만원”이라며 반박하자 민주통합당 남윤인순 의원은 ‘정부의 거짓 해명’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부부의 지난 5월 수입은 395만원이었고, 남편은 몸이 아파 병가 중이었으며, 6800만원의 부채 때문에 사위 월급의 반은 압류되고 있었다.

정부의 억울한 속내는 짐작이 간다. 한시적일망정 딸네 소득은 생활비 등을 공제하고도 부양능력 판단의 상한선인 월 364만원을 넘겼고 일용근로, 행상 등 부양의무 면제 사유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기준을 넘겼으니 수급 탈락은 마땅하다. 이게 “안타깝지만 적법한 조치”(복지부 장관)라고 말하는 행정의 논리다.

현실에서 할머니는 도움이 절실했고, 사회는 돕지 못했다. 둘 사이의 절망적 낭떠러지에 대해 행정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애초 부양의무제의 설계가 그렇다. 부양의무제는 빈민구호라는 오랜 난제에 한국사회가 내놓은 절묘한 답변이다. 1차 책임은 가족이 지고 국가는 탈락자만 거둔다. 탈락자가 적을수록 국가는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거둔다. 그래서 행정이 나섰다. 기준을 따지고 대상자를 선별했다. 이 과정에서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노모의 마음이나 개인의 불안한 고용사정, 갑자기 끊긴 한 달 100만원의 의미 같은 건 사라졌다.

규모조차 알 수 없는 거대변수의 등장을 행정은 고려할 마음도, 능력도 없다. 현실은 상수가 고정된 방정식이라기보다는 변수투성이 서술형 문제에 가깝다. 그건 정치의 주전공이다. 맹점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가 변하는데 답이 어떻게 하나이겠는가. 그래도 할 수 없다. 자주 휘고 부러져도 정치라는 지팡이 없이 우리는 결코 행정이 정해놓은 정교한 규칙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최근 안철수 후보가 말한 정치쇄신안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인의 부패와 특권을 깨는 쇄신은 절실하지만 그게 의원 줄이기로 환치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런 논리라면 지방의회의 그 많은 정치인들은 죄다 행정가로 대체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더 적은 정치가 아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정치가 필요하다.

이영미 정책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