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은혜에 길들여지는 인간

입력 2012-10-28 17:38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은혜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은혜가 찾아와도 새롭고 신선한 감사가 일어나기보다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은혜에 길들여지는 속성이란 인간의 절망적인 죄성 중에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작가 이상헌씨의 글에서 본 이야기다. 우리나라가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살던 시절, 그의 이모님은 매일 아침 거지들을 위하여 100여명의 밥을 지어 제공했다는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100명의 식사를 해준다는 것이 생각처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이면 거지들이 문 밖에서 줄을 서서 밥을 줄 때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님이 덜컥 병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거지들은 ‘왜 밥을 주지 않느냐’며 온갖 욕설과 함께 집에 돌을 던지면서 “이 집 망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설인가. 돌이켜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야에서 기적을 보아도, 기적의 떡과 기적의 물을 마셔도, 그 약발이 그렇게 길게 가지 못했다. 받은 은혜에 금방 길들여져 버리는 현상은 역사 속에서 반복된 고질병이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할 때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역시 은혜에 길들여진 고질병이 문제였다는 결론이다.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서도 맛있는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먹을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재미가 사라진 인생을 사는 것은 정말로 재미있는 일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재미에 중독되고 길들여져 실제로는 재미를 느끼는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무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길들여지고 중독돼 감사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성도들이 감사헌금을 많이 할 때가 언제인가를 가만히 봤더니 놀랍게도 좋은 일이 있을 때보다는 어려울 때이다. 삶의 고난이 있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 감사가 더 많아진다. 좋은 일이 많아지면 당연히 감사도 늘어날 것 같지만, 은혜에 길들여지는 고질병이 역시 문제다. 오히려 은혜를 느끼는 영적 감각은 고난의 때에 살아나고, 그러기에 감사도 고난의 때에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역설적인 현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은혜에 길들여지는 고질병을 치유하시는가 보다. 최근 ‘1일 1식’을 부르짖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나구모 요시노리는 말하기를 장수유전자가 공복 시에 활발하게 일을 한다고 했다. 은혜에 길들여지는 인간도 은혜의 공복 시에 정신을 차릴 수 있으려나. 감사의 계절에 문득 그 생각이 난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