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저성장 수렁] 글로벌 한파에 얼어붙는 성장엔진
입력 2012-10-26 19:00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석유파동, 외환위기 등이 닥쳐도 이내 회복세를 보였던 우리 경제가 이번에는 다르다. 2010년 말 이후 꾸준히 경기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장기 저성장 시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신용등급 상승 등 경제 펀더멘털이 양호해졌지만 글로벌 경기침체 앞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내부에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어 진퇴양난이다.
◇‘L자형 장기 저성장’ 진입=우리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사그라진 2009년 말 이후 반등에 성공했지만 연이어 터진 유럽과 미국의 재정위기에 채 1년도 버티지 못했다. 분기별 경제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2분기 3.5%에서 3분기 3.6%로 0.1% 포인트 소폭 오른 것을 제외하면 2010년 4분기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로 분기 성장률이 2% 밑으로 내려간 것은 네 차례다. 석유파동(1980년 1∼4분기), 외환위기(1998년 1∼4분기), 카드사태(2003년 2분기), 금융위기(2008년 4분기∼2009년 3분기)뿐이었다. 당시 성장률 추락은 1년 이내로 마무리됐다. 위기 직후 성장률은 상승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는 2010년 말 이후 별다른 반등 기미 없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L자형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추락이 쉼 없이 이어지자 위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일상화한 관행이 됐다”며 “이는 새 패러다임”이라고까지 말했다.
◇잠재력에 못 미치는 성장률=김 총재는 지난 12일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8%라고 밝혔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2.4%)은 김 총재가 제시한 잠재성장률에 크게 밑돈다. 심지어 한은 전망치보다 실제 성장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로 치면 시속 38㎞로 달릴 수 있는 엔진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24㎞로 달리기도 벅찬 상황에 처한 것이다. 밖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데다 타이어마저 펑크 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잠재력에 못 미치는 성장률을 보이는 주요 원인으로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는 세계경제를 지목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재정위기가 유럽으로 번지면서 세계 주요국들은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감축)에 나섰다. 국가와 민간부문이 모두 빚 갚는 데 나서자 중앙은행에서 아무리 자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있다. 내수가 침체되면서 수출입이 줄고, 다시 경기가 가라앉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또 우리 경제 내부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가 얽혀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 단기 부양에 나서고 싶어도 부동산이 발목을 잡고 있다. 단기 부양에 가장 효과적인 건설 경기를 끌어올리자니 가계 부채 규모가 팽창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냥 놔두자니 민간의 부채 감축에 따른 내수 침체가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고통을 감내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도 경기 하방 위험이 더 크다는 것이 문제”라며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아예 꺾이는 게 아닌지 경제당국과 정치권도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