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 누출사고 한달… “암 걸린다 흉흉한 소문” 주민 공포 여전

입력 2012-10-26 18:55


경북 구미4공단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됐다. 하지만 피해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과 고통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26일 오후 1시 불산이 누출됐던 구미시 봉산리 ㈜휴브글로벌 건물은 사고 당시의 처참한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불산으로 인해 페인트가 벗겨져 흉물스러웠다. 출입문은 ‘접근금지’ 팻말이 걸린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불산이 누출됐던 탱크로리는 검은 차양막이 덮여 있었고 방호복을 입은 직원 2명이 탱크로리 위에서 잔해 제거 작업을 했다. 건물 안 한 직원에게 “불산이 남아 있느냐”고 묻자 “탱크로리에 아직 담겨 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불산 탱크로리 바로 옆에 위치해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봉산1리는 적막했다. 마을 입구 식당 문에는 ‘가스 누출사고로 인해 임시휴업합니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집들은 대문이 열린 채 텅 비었고 인기척도 없었다. 마을 포도밭과 대추밭, 고추밭에는 잎이 누렇게 변하거나 갈색으로 바싹 말라버린 열매들과 썩은 작물들이 방치돼 있었다.

5분 정도를 걸어 마을회관으로 들어서자 주민 20여명을 만날 수 있었다. 50대 전후의 이들은 낮 동안 마을 경비를 했다. 얼굴마다 피곤함이 배어 있었다. 주민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임시대피소를 오갔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아직도 아픈 사람이 많은데 정부는 괜찮다고만 한다” “정부가 하는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며 불만들을 쏟아냈다.

김정준(52)씨는 “‘시간이 지나면 암에 걸린다’ ‘뼈가 삭는다’ 등 소문이 여전하다”면서 “정부가 주민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2시쯤 찾아간 임시대피소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백현리에 있는 구미환경자원화시설 내 주민편의시설 2층(165㎡)과 3층(330㎡)에 마련된 임시숙소에는 주민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주민 90여명 중 젊은 사람은 모두 외출하고 70대 전후 할머니들이었다.

황원수(61)씨는 “어르신들은 몸도 불편한 데다 날씨까지 추워져 대피소 생활이 많이 힘들다”며 “꼭 수용소에 있는 기분이어서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한숨지었다.

앞서 정부현지합동조사단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주민들의 건강상태에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임시대피소 주민들도 가벼운 우울증과 불안증상은 있지만 사고로 인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보이는 주민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가 불산 누출사고 지역의 가축 3997마리를 축산물위생법에 따라 모두 폐기하기로 한 데 대해 환경단체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환경운동연합, 녹색당, 녹색연합 등은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고려하지 않는 정부 대책은 2011년 구제역 발생 때 350만 마리의 동물이 생매장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들은 이어 “이번에도 대량 학살로 제2의 구제역 사태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냐는 사회적 불안감마저 조성하고 있다”면서 “개체의 감염과 고통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정확한 수의학적 점검과 안락사 여부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미=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