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성범죄자 취급받고 325원 벌어요”… ‘오해’ 안고 달리는 택배 기사들
입력 2012-10-26 19:09
열악한 근무환경과 장시간의 육체노동, 고객들의 무분별한 항의로 가뜩이나 힘든 택배기사들. 요즘엔 택배기사를 가장한 절도나 성범죄가 자주 발생하면서 범죄자 취급을 받기도 해 택배기사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H택배 기사 김모(35)씨는 지난 18일 밤 11시쯤 서울 상암동에 마지막 택배를 배달하러 갔다가 고객 문모(여)씨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문씨는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이 늦은 시간에 당신이 택배기사인지, 성폭행범인지 어떻게 아느냐. 다음날 다시 오라”고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김씨는 “그날 배정된 택배 물량이 130개여서 오전 8시부터 한 시간에 8∼9건씩 쉴 새 없이 배달했지만 결국 예상 시간보다 두 시간 늦었다”며 “당일 배송을 못 하면 배송이 지연된다고 항의하고, 늦은 시간에라도 가면 도둑이나 성폭행범으로 오해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D택배 기사 한모(42)씨는 지난 23일 고객이 집에 없어 통화 후 고객이 원하는 곳에 물품을 놔뒀다. 그러나 다음날 “택배를 못 받았다. 배달사고가 난 거 아니냐”며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한씨는 “그 고객에게 원룸 현관문 앞에 두면 도둑맞을 수 있어 다른 데 맡길 곳이 없느냐고 했더니 그냥 놓고 가라고 했다”며 “내 잘못이 없었지만 결국 고객에게 수차례 사과하고 나서야 겨우 무마됐다”고 말했다.
1992년 6월 한진택배의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 올해로 택배업은 20년이 됐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연간 택배 물량은 13억7400만개, 시장 규모는 3조3300억원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택배 단가가 계속 하락하면서 건당 임금을 받는 배송기사들은 하루 100개가 넘는 물량을 처리해야 일정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전국 택배 영업소 300곳을 대상으로 ‘택배업계 운영실태 및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택배기사들은 하루 평균 110개 물량을 처리하고 있었다. 평균 근로시간은 11.9시간이나 됐다. 또 택배 영업소들은 택배 1박스를 5000원에 배송할 때 평균 325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었다. 편의점 택배는 배송비가 최저 2000원에 불과해 수익은 더욱 떨어진다.
택배기사 지모(45)씨는 “새벽 6시부터 자정까지 밥 먹을 시간 없이 10시간 이상을 걷고, 하루 평균 6000여개의 계단을 오르지만 매월 유류비, 휴대전화 요금, 각종 세금을 빼면 하루 6만원 벌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중소 택배회사를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젊은 사람들은 택배업이 돈도 못 벌 뿐만 아니라 힘들고 무시당하는 직업이라고 불평하며 다들 떠나버려 인력난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김경종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배송기사의 근로환경 개선 등 업계의 애로를 해소해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