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역린의 역설
입력 2012-10-26 18:32
우리가 제대로 보지 않아서 그렇지 가지런하게 한쪽 방향을 향해 누운 물고기 비늘 중엔 거꾸로 박힌 비늘이 하나씩은 꼭 달려 있다고 한다. 시인 손택수의 말이다. 하찮은 물고기에도 역린이 있다면 고등 동물에 속하는 인간에게는 그것이 왜 없을까. 있을 것이다. 발현되지 않아서 그렇지.
역린(逆鱗)은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려는 한비의 책 세난(說難)편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갑남을녀의 보통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를 말하는 바, 설득이라기보다 간언을 하거나 담론을 펴는 일일 것이다. 한비는 주군에 대한 설득이 얼마나 어려운지 숱한 예화를 들어 설명했다.
핵심은 군주의 역린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간언과 설득의 어려움이 있다. 기본은 자신이 군주로부터 총애를 받는지, 미움을 받는지 잘 살펴서 확인하는 데 있다고 한다. 유명한 여도지죄(餘桃之罪) 이야기가 여기에 나온다. 똑같이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상납했는데도 왕의 총애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오로지하고 있는 일인자에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자칫 역린을 건드려 자신은 물론 온 집안이 풍비박산나기 십상이다. 가령,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한 일을 논하면 자기 마음속을 살피려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을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재주가 없다고 여겨 물리치고, 자질구레하게 폭을 넓혀서 말하면 질서가 없다고 여겨 물리침을 당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한 대선 후보가 자신이 직간접으로 관련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도 화를 더 키웠다며 비난받은 적이 있다. 측근들도 적절한 조언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욕을 들었다. 역사의식이 없도록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비의 가르침을 기억한다면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지고지난한 일인지 미처 모르고 한 말일 것이다. 그래서 역린을 건드리는 충신이 더욱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발을 절단당하는 형벌을 각오하고 군주의 수레를 몰래 탈 큰 배짱을 가진 신하는 정녕 없단 말인가.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