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건강보다 대기업 보호하는 식약청
입력 2012-10-26 18:32
서민들이 밥 대용으로 즐겨 먹는 라면의 수프에서 단백질이나 지방이 완전히 연소되지 않은 경우 생기는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검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6월 검사한 결과 수프에 들어가는 가다랑어포 분말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벤조피렌이 나온 것이다. 이 일로 가다랑어포 분말 생산 업주는 구속됐다.
하지만 식약청은 이를 납품받은 농심과 동방푸드마스타 등 9개 업체에 대해선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원료인 가다랑어포에 대해선 벤조피렌 허용기준이 있지만 완제품인 라면 수프에 대해선 기준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농심에서 만든 ‘너구리’ ‘새우탕 큰사발면’ 등 비교적 잘 팔리는 제품에 이 수프가 들어갔으나 회수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23일 민주통합당 이언주 의원이 이 사실을 처음 폭로했을 때 식약청은 “농심의 제품은 안전하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식약청은 해당 제품을 회수키로 입장을 바꿨다. 또 농심 등에 대해선 시정명령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관성을 상실한 행정으로 국민 불안이 더 커졌을 뿐 아니라 벤조피렌을 적발한 지 4개월여 만의 회수 결정이어서 실효성도 의문이다. 식약청이 국민의 건강을 챙기기보다 대기업을 봐주려 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관련 공무원을 문책하고,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농심도 문제다. 농심은 25일까지 “(너구리 등을) 안심하고 드셔도 좋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자체적으로 조사를 의뢰한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제부터 해당 제품 회수에 나섰다. 소비자에게 벤조피렌 검출 사실을 알리지 않고, 얼렁뚱땅 넘기려다 어쩔 수 없이 반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라면 수출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이미 대만 보건당국은 ‘너구리’에 대해 회수 결정을 내렸고, 이에 따라 대만의 주요 상점들은 ‘너구리’ 제품을 진열대에서 철수시키고 있다. 국제적인 망신이다.